“사직 전공의 8명 봉사 중… 정부, 이들 얘기 귀 기울여야”

정해민 기자 2024. 9. 3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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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미래를 묻는다] [6] 51년간 빈민 위해 의료 봉사… 고영초 영등포 요셉의원 원장

지난 26일 기자가 찾은 서울 영등포구 ‘요셉의원’은 노후 주택가의 좁은 골목, 빨간 벽돌로 만든 3층 주택 건물에 있었다. 색이 바랜 작은 간판 아래 달린 좁은 출입문을 지나 2층으로 계단을 오르자, 고영초(71) 원장이 진료실에서 60대 환자의 발목을 맨손으로 주물러주며 “여기가 아프시냐”고 묻고 있다. 연신 환자와 눈을 맞추며 말을 건네는 의사의 얼굴이 웃음으로 밝다. 그는 서울 의대 재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51년간 쪽방촌 주민, 노숙인 등 소외 계층에게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고 원장은 “이번 사태 이후 사직 전공의 8명이 의료 봉사자로 요셉의원에 들어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의사 중에는 천사 같은 사람이 더 많지만, 돈만 아는 집단으로 매도되면서 의사들의 자존심이 뭉개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26일 서울 영등포구 요셉의원 진료실에서 고영초 원장이 60대 환자의 발목을 맨손으로 주물러주고 있다. 발목과 무릎이 아파 찾아왔다는 환자가 "더러운 발을 만지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라고 하자, 고 원장은 "아니 뭘요. 손 씻으면 되는 거지요"라고 했다. /박상훈 기자

-수십 년간 의료 봉사를 한 이유는.

“어릴 적부터 신부가 되려고 했는데, 대신 의사가 됐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두 직업의 공통점이다. 학생 때부터 내가 가진 지식과 시간을 남과 나누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요셉의원에서 봉사하는 의사는 몇 명인가.

“140명 정도다. 그중 사직 전공의가 8명이다. 이 사태 전까지 전공의 봉사자는 한 명도 없었다. 봉사자를 뽑을 때 내가 면접을 본다. 병원을 떠난 후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 사직 전공의는 다 오라고 했다.”

-사직 전공의들이 여기서 어떤 일을 하나.

“쪽방촌 환자들을 찾아가 진료한다. 전공의들은 우리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처음 마주하고 놀라기도 하고, 쪽방촌 주민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의료 봉사를 하고 싶다는 사직 전공의도 많다.”

-의정 갈등으로 환자 피해가 커지고 있다.

“정부의 명령권자가 내년 의대 증원부터 취소해야 한다. 유급한 의대생이 3000명이 넘고, 내년에 새로 들어오는 의대생은 4500명이 넘는다. 한꺼번에 7500명을 교육하기는 불가능하다. 교수들도 사직하고 있는데 (늘어난 의대생을 가르칠) 새로운 교수 1000명을 어디서 구하나.”

-정부가 어떤 조치를 해야 할까.

“정치인들이 잘못된 정책을 편 데에 사과하고, 의료계 이야기를 들어가며 정책을 바꿔야 한다. 특히 필수 의료 의사들이 법적으로 잘 보호받게 해야 한다. 의사가 소신껏 진료했을 때는 객관적 오류가 없는 이상 보험회사에서 다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수가 체계 등 제도적 문제는 무엇인가.

“전체 파이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진료과별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를 나누게 하는 제도도 문제다. 필수 진료과에 수가를 많이 줘도 다른 진료과에서 불평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한다. 그동안은 의사들의 노력을 쥐어짜서 저비용·고품질 의료를 유지해 왔다.”

-의료계도 대화에 나서야 하지 않나.

“복지부는 의료 정책을 만들 때 정부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뽑아서 의료계 대표로 둬왔다. 의협 등 의료계 처지에서는 들러리인 게 확실하니 논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복지부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의료 단체들을 바꾸는 일이 앞서야 한다.”

-어떻게 전공의를 돌아오게 할 수 있나.

“증원을 철회한다고 해도 안 돌아올 전공의가 많다.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됐고, 우리나라 의사로 산다는 데 보람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겠다는 전공의도 많다. 지금 대한민국 의료 수준은 워낙 높고, 우리가 근면한 것도 다 안다. 전 세계 어디든 간다고 하면 다 환영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나라 의료의 질은 떨어진다.”

-환자를 떠난 의사들에게 해줄 말은.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이 문제가 해결돼야 돌아올 것이다. 저수가를 겨우 견디며 필수 의료를 해 온 의사들의 자존심이 다 뭉개졌다. 전공의들이 빨리 정상적인 수련을 다시 시작해서 환자를 돌볼 전문의들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요즘 의사들은 필수 의료를 안 하려 한다.

“돈 벌려고 의사가 된 사람도 있고, 남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 정말 사명감이 있는 의사는 자신의 지식과 기술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필수 의료를 할 것이다.”

:고영초 원장

1953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에서 학부와 석·박사를 마쳤다. 서울대병원에서 수련하고 신경외과 전문의 자격을 얻었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과 인제대 서울백병원 등에서 근무했고, 2012~2014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장을 지냈다. 서울의대 재학 시절인 1973년부터 현재까지 51년간 의료 봉사를 하며 환자 3만여 명을 치료했다. 서울의대 가톨릭 학생회에서 의료 봉사를 시작했고, 졸업 후 전진상의원·라파엘클리닉·요셉의원 등에서 무료로 진료했다. 지난해 3월부터는 요셉의원 원장을 맡아 유일한 상주 의사로서 일주일에 4일 진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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