罪·富·神이란 무엇인가… 연극이 인간의 심연을 묻다

이태훈 기자 2024. 9. 30. 00: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묵직한 질문에 경쾌한 답변 ‘트랩’ ‘몰타의 유대인’ ‘고트’
2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연극 '트랩' 공연 장면. /세종문화회관

“그럼, 제가 피고를 연기해 드리면 될까요?”

졸부 같은 정장 차림의 남자는 ‘당신들의 수작에 다 맞춰 드리겠다’는 듯 여유롭다. 퇴직 검사가 손을 내젓는다. “아니오, 그럴 필요 없어요. 죄를 찾아내는 건 식은죽 먹기니까!”

섬유회사 판매 총책임자인 남자 ‘트랍스’(김명기)는 이 저택 만찬에 모인 사람들이 수상쩍다. 자동차 고장으로 우연히 묵게 된 시골 마을, 검은 법복을 입은 노인들의 저택 만찬에 초대 받아 거절할 수 없었던 것 뿐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 사형집행인으로 정년 퇴임한 노인들의 소일거리는 값비싼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벌이는 모의법정 게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은 ‘피고’다. 변호사 노인이 트랍스를 걱정하며 묻는다. “당신은 정말 죄가 없다고 생각해요?” 트랍스는 확신한다. “완벽히!” 그러나 이 확신도 곧 산산조각날 운명이다.

/세종문화회관

잊고 살아가는 삶의 본질적 문제,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질문은 무대 예술에 특화된 힘. 명성있는 극단, 관록의 배우들, 탄탄한 텍스트의 희곡으로 무장하고 죄(罪), 부(富), 신(神) 같은 묵직한 질문에 경쾌하게 접근하는 연극들이 잇따라 무대에 올랐다.

◇‘트랩’의 ‘죄(罪)’

2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서울시극단 연극 ‘트랩’은 죄와 양심에 관해 질문한다. “얼마 전엔 막 당선된 국회의원이 공갈협박죄로 14년형을 선고받았지. 우린 프리드리히 대제에게도 무능력을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했다네!” 어떤 죄도 들춰낼 수 있다는듯 기세등등한 노인들은 트랍스가 임원으로 승진하게 된 계기인 직속 상사의 죽음에 그의 미필적 고의는 없었는지 추궁한다. 게임에 말려들수록 트랍스의 무죄 확신은 뜻밖의 부조리한 방향으로 변화한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법정 공방을 지켜보는 배심원이 된 기분. 무거운 주제인데도 객석은 자주 폭소로 들썩인다. ‘트랍스’ 역의 김명기를 비롯, ‘판사’ 역의 이해랑연극상 수상자 남명렬 등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가 환상과 실재의 경계에 있는 듯한 연극에 또렷한 현실감을 입힌 덕이다.

그래픽=김의균

독일어 ‘법정(Gericht)’는 ‘법정’과 ‘요리’의 동음이의어. 실제 이 무대 위 식탁엔 계속해서 진짜 음식이 나오고, 극이 고조될 수록 더 비싼 와인이 등장한다. 진짜 술은 아니지만, 배우들은 먹고 마시며 연기를 이어간다. 등장하는 이름들 역시 독일어로 검사는 ‘초른(zorn·분노)’, 변호사는 ‘쿰머(kunmmer·걱정)’, 사형집행관은 ‘필레(filet·고기 덩어리)’. 연극은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생존 혹은 욕망을 위해 타인을 속이고 짓밟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고급스러운 우화가 된다.

독일 작가 프레드리히 뒤렌마트의 단편소설을 올해 서울연극제 대상을 받은 하수민 연출이 무대로 옮겼다. 10월 20일까지, 4만~5만원.

◇‘몰타의 유대인’의 ‘부(富)’

그래픽=김의균

29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몰타의 유대인’ 무대에도 탄식과 폭소가 쉴 새 없이 교차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깊은 영향을 끼친 영국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원작은 르네상스 유럽을 뒤흔든 블랙 코미디의 원조. ‘천국도 내친 자’로 혐오와 멸시를 견디며 나라 없이 떠도는 유대인인 바라바스(곽지숙)의 유일한 목표는 오직 돈을 벌어 부(富)를 쌓는 것 뿐이었다. 몰타의 총독이 튀르키예에 바칠 조공을 마련하려 평생 쌓은 부를 몰수하자, 금지옥엽 외동딸까지 이용해 간계를 꾸미며 죽음과 배신, 몰락과 부활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탄다. 끝없는 탐욕과 집착의 끝, 모두가 죽고 평생 이룬 모든 것도 잿더미가 된 도시를 바라보며 바라바스는 말한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물질적 부를 향한 인간의 탐욕은 질기고, 그 끝을 알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한다.

◇‘고트’의 ‘신(神)’

그래픽=김의균

최근 폐막한 연극 ‘고트(Gott)’는 제목부터 독일어로 신(神). 암으로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뒤 2년을 버틴 남자가 ‘내 뜻 대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며 연방정부에 낸 사망 조력 약물 청원이 거절당한 뒤, 이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의사, 법학자, 가톨릭 주교, 시니컬한 변호사 등이 맞서며 각자의 입장에서 논리를 전개한다.

‘신과 인간 앞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제정되었다’는 독일 헌법 전문의 언급은 나치즘에 대한 독일의 반성이자 완벽한 국가나 법 체계는 없다는 인간 겸손의 표현. 그러나 연극은 이미 신을 버린 세상에서, 인간은 자유의지로 자신의 죽음조차 결정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탄탄한 텍스트가 얼마나 힘이 센 지 웅변하듯 증명하는 무대. 모두가 옳고 모두가 일리 있는 주장을 펴는데, 관객은 귀를 쫑긋 세우고 최고속으로 두뇌를 가동하며 연극을 따라가게 된다.

죽고 싶은 남자에게 약물을 주는 일을 찬성하는 쪽은 ‘사망 조력’이라 부르고, 반대하는 쪽은 ‘자살 조력’이라고 말한다. 의사는 “의사가 환자를 살리는게 아니라 죽는 걸 돕기 시작하는 순간 의사와 환자의 신뢰를 포함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그런 신뢰는 무너진지 오래다. 근거 역시 실제 선서에 쓰지도 않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뿐이다.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도 제대로 대응 못하는 교회가 생명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힐난받던 가톨릭 교회 주교는 교구 교회에 6년째 찾아와 기도하는 여자에 대해 말한다. 25살 때 차 앞으로 뛰어든 아이를 사망케 한 차 사고 뒤, 인간의 법정은 그녀를 용서했지만 그녀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가족도 버리고 매일 교회에 나와 죽고 싶다고 기도하는 것이 그녀의 일과다. ‘그녀가 죽음을 원한다고 해서 치사량의 약물을 제공할 수 있겠느냐’고 주교가 물을 때, 배우도 관객도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모든 논리가 옳지만, 그 논리마다 허점은 있다. 연극은 매 공연 끝에 ‘건강한 인간에 대한 사망 조력’ 허용 여부를 관객들의 온라인 투표에 부쳤고, 찬반 결과는 그날 그날 라이브 무대의 설득력에 따라 엇갈렸다. 이런 역동성 역시 연극만이 갖는 매력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