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준비한 ‘스파이 역량’ 통했다… 헤즈볼라 수뇌부 궤멸 직전
최첨단 해킹도구 개발하며 헤즈볼라 겨냥
비밀회의 장소·시간 정확히 알아내 폭격
헤즈볼라 32년 지휘한 나스랄라 포함 지휘부 궤멸
1982년 창설돼 가장 강력한 전력을 지닌 비국가단체로 불리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공격을 받은지 2주도 되지 않아 벼랑 끝에 몰렸다. 헤즈볼라를 32년 동안 지휘한 수장 하산 나스랄라와 헤즈볼라 남부 사령관 알리 카라키 등 주요 지휘부가 공습으로 숨지면서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지휘부의 비밀회의가 열리는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파악해 벙커버스터(지하로 뚫고 들어가 터지는 폭탄) 폭격에 나섰다. 이스라엘이 지난 18년 동안 키워온 정보역량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29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27일 헤즈볼라 지휘부의 비밀회의가 열린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다히예 지역을 공습해 나스랄라 등 주요 지휘관을 폭살했다. 이번 작전에는 공군 69비행대대 전투기들이 투입돼 2000파운드(907㎏)급 BLU-109 등 폭탄 약 100개를 2초 간격으로 투하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헤즈볼라의 비밀회의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었을까.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이 2006년부터 정보수집 역량을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은 2006년 7월 헤즈볼라가 납치한 자국 군인을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헤즈볼라와 전면전을 벌였다. 하지만 34일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100여명의 전자사를 내고 철수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압도적 전력을 갖췄다고 평가받았지만, 헤즈볼라의 구체적인 전력 현황과 지휘 체계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게릴라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이스라엘은 산하 비밀첩보기관 ‘8200 부대’를 중심으로 정보역량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협력하는 한편 헤즈볼라의 휴대전화 등 통신수단을 감청할 수 있도록 최첨단 해킹 도구를 개발했다.
이스라엘은 더 많은 최신 드론(무인기)를 띄우고, 보유한 10여개의 군사 목적 인공위성을 통해 헤즈볼라의 곳곳을 지속적으로 감시해 왔다. 중요한 정보는 신속하게 전달되도록 전담반도 신설됐다.
특히 레바논 국경과 맞닿아 있다는 장점을 활용해 민간인으로 위장한 특수부대원을 잠입시켜 공작도 벌였다. 헤즈볼라와 이란 내부에 정보원을 심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강화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헤즈볼라 수뇌부들을 하나하나 정조준했다. 2008년에는 여러 테러를 주도한 헤즈볼라 최고위급 간부 이마드 무그니야를 폭사했고, 2020년 1월에는 이란혁명수비대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제거하는 데 일조했다. 당시 이스라엘은 솔레이마니가 레바논에 입국한 뒤 나스랄라와 만나는 정황을 포착했지만, 전쟁 발발을 우려해 정보만 미국에 넘겼다. 미국은 이를 토대로 솔레이마니를 추적하다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 근처에서 드론 폭격으로 그를 제거했다.
지난 7월에는 나스랄라의 오른팔로 불리던 푸아드 슈르크가 베이루트 정부를 찾았다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이달 초에도 시리아에 있는 헤즈볼라와 이란의 미사일 공장을 찾아내 폭격했다.
특히 지난 17~18일에는 헤즈볼라에 보급된 무선 호출기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폭파시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혔다. 휴대전화 도청을 우려한 헤즈볼라가 무선호출기 사용을 장려하자, 이스라엘 정보 당국인 모사드가 헝가리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뒤 폭발물이 담긴 무선호출기를 헤즈볼라에 대량으로 판매한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지난 19일부터는 레바논 각지에 있는 헤즈볼라를 겨냥한 대규모 공습에 나서 헤즈볼라 특수작전 부대 라드완의 지휘관 이브라힘 아킬 등 주요 지휘관 10여명을 몰살시켰다. 이스라엘은 아킬이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본토 침투를 위한 땅굴을 살피고 돌아오는 과정을 지켜보다 베이루트 작전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건물에 폭격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에는 헤즈볼라의 미사일·로켓 부대 사령관 이브라힘 무함마드 쿠바이시를 표적 공습으로 제거했고, 결국 지난 27일 수장인 나스랄라마저 제거하면서 헤즈볼라를 사실상 궤멸 상태로까지 몰아붙였다. 이스라엘은 지난 27일 공습으로 나슬랄라와 그의 경호 책임자 등을 포함해 최소 20명의 헤즈볼라 지휘관을 제거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은 자국 내 정보기관을 대대적으로 강화하고, 일선 전투 부대 말단까지 정확한 정보를 수집할 체계를 구축했다”며 “이스라엘의 최근 성과는 지난 18년 동안 축적해 온 정보력과 첨단 기술 덕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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