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쓰레기 풍선 왜 자꾸 보낼까
[더 보다 27회 I] 쓰레기 풍선 무엇을 노리나
2024년 대한민국을 뒤덮은 쓰레기 풍선.
수도권은 물론이고 충청, 경북에까지 왔습니다. (KBS뉴스 2024년 6월 2일)
지난 5월 이후 넉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북한의 도발.
피해는 이미 현실입니다.
인근 주민/
큰 봉지가 떨어져가지고 이 유리로 완전히 그냥 가운데로 뚝 떨어졌나 봐요.
식당 주인/
그것이 떨어져서 이렇게 '팡' 하고 그럴 정도인지 꿈에도 생각 못 했지.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도발.
신승기/한국국방연구원 북한 군사연구실장
항상 도발하는 쪽은 더 쉽거든요. 대응하는 쪽은 더 많은 자원과 예산, 시간이 필요하고.
파주 전망대에서 바라다보이는 북한.
북한이 쓰레기 풍선이라는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도발을 시작한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경기 고양시, 지난 7월>
지난 7월 쓰레기 풍선이 떨어진 경기도 고양의 주택 단지.
기자 :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이 단지에 오물 풍선 옥상에 떨어졌다고…
주민 : 저기요.
취재진은 당시 현장에 있었던 주민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주민 : 제가 집에 있었는데 펑 터지는 소리가 크게 나긴 했거든요. 제가 사진 찍어놓은 거 있는데.
기자 : 혹시 그 사진만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민 : 여기 있다. 일단 이렇게 터졌었거든요.
기자 : 아, 이 안에 쓰레기가 엄청 많네.
주민 : 그래서 이게 왜 터졌지?
주민이 찍은 옥상 사진.
불에 탄 쓰레기들이 어지럽게 흩어져있습니다.
이날은 북한이 10번째로 풍선을 날려 보낸 날이었습니다.
주민 : 저도 깜짝 놀랐어요. 터지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를 못해가지고.
기자 : 그렇죠. 많이 놀라셨겠어요.
주민 : 저는 아기랑 있어가지고
옥상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주민 : 지금 공사를 했나 봐요. 이런 잔해들은 조금 남긴 했는데. 안 그래도 지금 옥상 방수 때문에.
기자 : 이 자리네.
주민 : 맞아요. 여기예요. 여기에서 터진 거라.
불이 났던 자리는 방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반재민/당시 출동 소방관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들이 흩뿌려져 있었고 그게 이제 불에 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피해는 옥상 약 한 3~4평(10~13㎡) 정도 그을음 피해가 있었고…
당시 옥상에서 발견된 타다 남은 물체.
풍선과 쓰레기 더미를 분리시키기 위해 부착한 ‘발열 타이머’입니다.
미리 맞춰놓은 시간이 되면 스스로 열을 내 비닐을 태워 풍선에서 쓰레기를 떼어내는 장치입니다.
이민복/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
전기로 해서, 열선으로 해가지고 그게 비닐 삐라(전단) 주머니를, 쓰레기 주머니를 녹여서 떨구는 거거든요. 불 아니에요. 불. 그게 잘못하면 쓰레기 비닐인데 옮겨붙을 수도 있고, 떨어진 다음에 또 작동할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건 작동하게 돼 있으니까 시간 되면.
이 발열 타이머 때문에 화재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5일 경기 김포의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데 이어, 사흘 뒤에는 파주에 있는 창고 지붕에도 불이 붙었습니다.
현장에선 비슷하게 생긴 타이머들이 발견됐습니다.
신승기/한국국방연구원 북한 군사연구실장
실제 유사시에 만약 생화학 물질을 넣는다면 지상에서 기폭하면 효과는 작거든요. 높은 고도에서, 적정한 고도에서 터뜨려야 확산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에, 효과가 커지기 때문에 일종의 그런 테스트도 겸해서 한 게 아닌가 추정합니다.
<경기 파주시, 지난달>
담당 공무원과 함께 지난달 쓰레기 풍선이 떨어진 파주의 야산을 찾았습니다.
기자 : 현장 사진은 받았거든요. 나뭇가지에 풍선 비닐은 걸려 있던데. 그렇죠?
주무관 : 네.
기자 : 현장에 자국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주무관 : 탄 흔적은 있을 거예요.
기자 : 아, 이렇게 돼 있네. 좀 남아있네요.
주무관 : 한 6~7평(19~23㎡) 정도.
당시 쓰레기 풍선이 떨어졌던 자리.
이곳에서도 발열 타이머로 인해 불이 났었습니다.
주무관 : 발화 지점이 보면 저 밑에 쭉 있죠?
기자 : 저쪽이요? 여기 가까운 데 말고 저기요?
주무관 : 네. 거기가 발화 지점이 돼서 주변으로 불이 붙은 거거든요.
기자 : 어? 저기 있네요?
주무관 : 네.
나뭇가지엔 아직 쓰레기 풍선도 걸려있습니다.
그날은 습도가 높아 큰 불로 번지지 않았지만, 쓰레기 풍선은 언제든 대형 산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박진수/파주시청 주무관
소방대에서도 그냥 호스를 끌고 올라온 게 아니라 그분들도 똑같이 등짐펌프 메고 그런 걸로 작업을 한 거죠.
북한 쓰레기 풍선은 지름이 2미터, 길이 3미터가 넘고 하단에는 종이와 플라스틱 등 생활 쓰레기가 담긴 비닐 뭉치가 매달려있습니다. 무게도 10kg에 달합니다.
북한은 지난 5월부터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한 달 주기로 쓰레기 풍선 수백 개를 바람에 실어 보내고 있습니다.
횟수로는 20여 차례.
이달 초에는 닷새 연속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집중적으로 풍선을 날려 보냈습니다.
북한의 쓰레기 풍선은 이제 흔한 일이 돼버렸습니다.
신승기/한국국방연구원 북한 군사연구실장
‘어, 너희들 괜찮아. 사는 데 문제없어. 일상이야’ 하면서도 여기서 전쟁 준비하면서 딱 덮쳤을 때는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상대방을 맞을 수 있거든요. 어느 정도 익숙해서 또 날아오거나 했을 때 다른 걸 보내는 거죠. 그러면 그때의 충격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항상 허점을 노리고 있거든요.
<경기 연천군, 지난달>
10여 년 전 귀농한 권미영 씨는 요즘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북한이 쓰레기 풍선을 날렸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하기 때문입니다.
권미영/연천 주민
어머나 그래도 오물이라 다행이다. 만약에 저거를 날리면서, 옛날에 저희 민방위 훈련 이런 거 하면서 화생방 경보도 했었고 생화학전 이런 거에 대해서도 학교 다니면서 들었는데 앞으로 그렇게 될까 봐 그게 너무 걱정됐어요.
풍선에 쓰레기 이상의 위험 물질이 달려있을 가능성.
많은 이들의 걱정거리입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풍선에 지금과 같이 쓰레기가 아닌 다른 거를 넣었을 때는 어떻게 할 건가요? 그것까지도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느냐 예요. 예를 들면 생화학 무기라든가 병원균을 넣는다든가 이런 방식으로 풍선이 악용될 가능성 이것들이 다 상존하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부분이 우려스럽죠.
북한이 날린 쓰레기 풍선은 어디로 떨어졌을까.
안보상 이유로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풍선 대부분은 서울과 경기 지역에 떨어졌고, 강원과 충북, 심지어 전남과 경북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홍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번 쓰레기 풍선 같은 경우에는 경상남도까지 날아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풍선으로 야기되는 이 문제들이 그냥 휴전선 일대의 어떤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아니라 내 실생활에서 내가 당할 수 있는 위협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거를 이제 느끼고 있는 거죠.
지난 5개월 동안 북한이 날린 쓰레기 풍선은 5천 5백여 개.
풍향, 풍속에 따른 낙하지점 데이터를 상당량 확보해 왔을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신승기/한국국방연구원 북한 군사연구실장
북한이 남한을 도발하기 위해서 그냥 띄운다 이게 아닐 겁니다. 남한 지역에 이 정도 풍량, 풍속에 대기 밀도면 어느 정도에 떨어지겠다는 계산은 가져갔을 겁니다.
<인천 연평도, 2010년 11월 23일>
지금 16시 5분. 지금 연평도 당섬에서 연평도 피해 상황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11월, 연평도에 포탄을 떨어트리는 직접 도발을 감행한 북한.
당시 우리 군도 K-9 자주포 80여 발로 즉각 대응해 북한에 막대한 피해를 줬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쓰레기 풍선 도발은 사격이나 포격 같은 직접 도발과 달리, 우리 군의 즉각적인 군사 대응이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른바 북한의 ‘회색지대’ 전략입니다.
신승기/한국국방연구원 북한 군사연구실장
회색이라는 색 자체가 흰색도 까만색도 아닌 그 사이에 모호한 색이기 때문에 이게 평시인지 전시인지 구분이 애매한 그런 상황이 있거든요. 북한의 도발에 저희들이 수준을 높여서 대응을 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봤을 때는 '한국이 너무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 이런 오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그걸 이용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경기 연천군, 지난달>
북한 접경지역 경기 연천에서 나고 자란 62살 오명춘 씨.
오명춘/연천 주민
제가 어렸을 때는 그때 여기가 배추밭인가 그랬어요. 진짜 어려서는 대남 방송도 듣고 삐라(전단)는 수시로…. 하늘에서 반짝반짝 떨어지는 것도 많이 봤고.
10년 전 어느 날.
북한은 연천을 향해 고사총 10여 발을 쐈고, 오 씨 인근 마을 면사무소 옆에도 총탄이 떨어졌습니다.
당시 우리 민간 단체가 날리던 대북 전단에 반발해 발사한 총탄이었습니다.
오명춘/연천 주민
체험 농장들도 여기 꽤 많고 유원지도 있고 민박들도 있고 그런데 그때 일시에 예약이 싹 취소됐어요.
북한은 쓰레기 풍선을 보내는 이유로 우리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오명춘/연천 주민
걔네(북한)가 날리기 전에 대북 탈북민 단체 그 사람들이 계속 (대북 전단) 날린다고 뉴스 나오고, 그거에 대해서 북한이 어떻게 대응할까 좀 불안한 감정은 있었지만 그게 그렇게 오물 풍선으로 날아온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남쪽에서 보내는 대북 전단, 그 풍선을 오물이라고 부르면서 자신들도 거기에 대응 조치로 오물 풍선을 보내겠다는 것을 5월 25일 얘기했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수많은 휴지장과 오물짝들이 곧 한국 국경 지역과 종심 지역에 살포될 것이다.’
지난 6월 접경지역 파주에서는 북한으로 대북 전단을 날리려는 민간 단체와 이를 막으려는 시청 직원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김태훈/파주시 행정안전국장
혹시라도 또 북한에서 지난번 연천군과 같이 포격 도발도 있을 수 있고 이러니까 주민들은 그런 거에 대해서 엄청 불안해하시죠.
이민복/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표
감옥도 저런 감옥이 없습니다. 거기는 삐라(전단)밖에 볼 게 없다고요. 너무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정말 깜깜한 그 작은 불빛이 그렇게 환하게 보인다고요.
정부와 군 당국은 쓰레기 풍선 살포가 대북 전단 때문이라는 건 북한의 주장일 뿐,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는 입장입니다.
이성준/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지난 23일)
우리 국민에게 불편과 불안함을 조성하여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는 저급한 행위입니다.
북한이 오랫동안 불편하게 여겨온 대북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대응 전략 중 하나라는 겁니다.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이것을 왜 이렇게 보내느냐. 결국 남측에서 북한에 전단을 보내는 그 사람들의 책임이지 않느냐라는 견해를 통해 한국 내에서 갈등을 일으켜서 이것을 막아보겠다는 것이 저는 북한의 가장 큰 하나의 의도라고 생각이 되고요.
<국방부 정례브리핑, 지난 23일>
이성준/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
우리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선을 넘었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 군은 단호한 군사적 조치를 시행할 것입니다.
우리 군은 계속되는 북한의 풍선 도발에 대해 처음으로 군사 조치를 언급했습니다.
북한의 쓰레기 풍선 도발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습니다.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우리가 명백한 선을 긋고 거기에 철저한 대응을 할수록 북한은 거기에 결국은 순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풍선 아래 쓰레기가 아닌 위해 물질이 매달려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함.
이로 인한 동요와 남남갈등.
즉각적인 군사 대응을 어렵게 하는 회색지대 전략.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들어 하나둘 데이터를 쌓는 북한.
하지만 이보다 더 우려되는 건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풍선 도발을 멈추지 않는 북한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부서울청사, 지난 20일>
지난 20일 정부서울청사 주차장에 쓰레기 풍선이 떨어졌습니다.
라벨 안에 평양시라고 써있어가지고요
지난 7월 용산 대통령실 경내에 이어 항공기가 수시로 이착륙하는 공항 활주로는 물론, 최근엔 KBS에도 연달아 풍선이 떨어졌습니다.
모두 국가중요시설입니다.
북한이 의도한 결과인지는 현재로선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신승기/한국국방연구원 북한 군사연구실장
누적된 표본을 통해서 이걸 어떻게 정밀하게 떨어뜨릴 건지 그런 노하우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보거든요. 그렇다면 아마 다음에 보낼 때는 더 정확하게 더 잘 보낼 겁니다.
수거 외에는 사실상 대응이 어려운 북한의 쓰레기 풍선 도발.
5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변칙적인 도발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대책이 필요합니다.
촬영: 강우용
촬영기자: 조승연 김민준
편집: 김태형
그래픽: 장수현
데이터 분석: 윤희진
리서처: 김보현
조연출: 유화영 김영일
나레이션: 남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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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기자 (nar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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