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지금 응급실 상황은
[더 보다 27회Ⅱ] 응급실은 지금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 문밖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보호자들로 붐빕니다.
<녹취> 환자 보호자
여기는 대부분 4시간 이상 기다리고 있어요.
구급차로 이송된 80대 환자도 응급실에 곧장 들어가진 못합니다.
<녹취> 환자 보호자
의사가 없으니. 저기 안에서 환자는 스무 명 대기하는 상태니까.
간간이 직접 운전해 응급실에 온 시민들이 보입니다.
<녹취> 환자 보호자
(119) 부르면 뺑뺑이 돌릴까봐 무서워 가지고. 여기로 와보자하고 출발을 했는데 강남에서.
규모가 작은 2차 병원 응급실도 바빠졌습니다.
<녹취> 환자 보호자
동네 그냥 병원 갔는데 큰 병원 가셔야 한다 그래서.
<녹취> 환자
이대목동병원 갈까 생각하다가 여긴 (응급실) 괜찮다 해서.
지난 2월 전공의들의 사직 이후 발생한 의료공백. 그 파도는 가장 먼저 응급실을 덮쳤습니다.
추석 연휴라는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인터뷰> 환자 보호자
당장 국군의 날, 개천절, 한글날도. 이렇게 빨간 날이 공휴일이 많고 하다 보니까 너무 좀 겁이 나고 두렵습니다.
■ “의사가 없어요”…8시간 만에 수술대 올랐지만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오는 119 구급대원들. 3분 만에 한 50대 남성을 실어 나옵니다.
갑자기 심한 복통을 호소한 환자였습니다.
신고한 지 22분 만에 도착한 한 2차 병원. 급성 복막염이라는 의사 소견이 나왔습니다.
급히 수술이 필요한 상황.
<인터뷰> 유족 (음성 변조)
복막이 터져서 심장 쪽을 누르고 있어서 숨 쉬는 게 어려우신 거 같다고. 그래서 지금 되게 위급하신 거 같다고. 지금 마취의도 없고 (여기선) 수술이 어렵다고 하셨고.
하는 수 없이 담당 의사와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수도권과 대전, 강원 소재 병원 70곳을 알아봤지만, 수술 가능한 곳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인터뷰> 유족 (음성 변조)
지금 수술할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이 다 안 계시다고 들었고.
결국 병원에 도착한 지 5시간이 지나 100km 떨어진 충남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된 환자.
신고 8시간 후인 오전 7시쯤 수술대에 올랐지만, 패혈증으로 결국 숨지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유족 (음성 변조)
더 일찍 좀 수술을 했으면 좀 그렇게 몸부림치지 않고 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프고.
■ 골든타임 놓치는 응급 환자들…구급대원들 “불안”
1시간 동안 응급실을 애타게 찾다 끝내 뇌 손상을 입고 의식불명에 빠진 2살 아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지만 불과 100미터 떨어진 응급실에서 이송을 거절당하고 끝내 숨지고 만 대학생.
의료진 부족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응급 환자는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119구급대가 응급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는 데 1시간 넘게 걸린 경우는 지난해보다 22% 늘었습니다.
<인터뷰> 엄태환 / 을지대 응급구조학과 교수
응급 환자 같은 경우는 전체 시간 1시간 이내에 처치, 수술 등을 받아야 하는데 그 시간이 아마도 지금 지체될 것 같고요. 병원 의료진의 부족이 이 사태를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환자 이송 시간이 길어질수록 구급대원들의 마음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구급대원 (음성 변조)
병원에서도 서로 3차 병원은 2차 병원 가라 그러고, 2차 병원은 3차 병원 가라 그러고. 서로 미루기 때문에 갈 데가 없는데 밤이나 휴일에. 중간 단계의 응급인 사람들이 더 위급하게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처치를 지금 못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와중에 이제 심정지가 발생하신 사례도 있고요.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구급대원 (음성 변조)
환자가 이제 잘못될 수도 있고 구급대한테 자꾸 전가되는 부분이 그런 부분이 되게 힘이 들고요.
■ 대학병원 응급실 파행에…지역 의료원 업무 가중
충북 충주 건국대병원. 이 병원은 9월 한 달 동안 평일 야간과 주말에 응급실을 닫고 있습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 가운데 5명이 이달 1일 자로 그만뒀기 때문입니다.
(※건국대학교 충주병원은 10월 1일부터는 응급의료센터 진료가 주말 및 공휴일 포함 24시간 정상 운영될 예정이라고 밝힌 상태입니다.)
<인터뷰> 김소라 / 충주시민
긴급 상황이 있으면 항상 건대병원 응급실을 이용했었거든요. 가장 큰 병원이 문을 닫아서 약간 불안한 마음이 있고요. 사람이 언제 어떻게 응급 상황이 생길지 모르잖아요.
환자들은 더 규모가 작은 충주의료원 응급실로 몰리고 있습니다.
밤 9시가 막 넘은 시각, 119 구급대원들이 한 80대 환자를 의료원 응급실로 옮깁니다.
야간 당직 의사가 환자 상태를 살핍니다.
<녹취> 김희상 충주의료원 응급실장
여기는요? 여긴 괜찮은 거 같고. 여기는요? (여기.) 여기가 제일 아파요? (네.)
머리를 다쳐 피가 나는 환자, 요로 결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 심정지 상태로 도착한 환자까지...
경증, 중증을 가리지 않고 시간당 2~3명의 환자가 응급실을 찾습니다.
작년 이맘때의 2배 수준입니다.
<인터뷰> 김희상 충주의료원 응급실장
요새는 초기 처치와 진단을 담당하시던 전공의, 전임의 선생님들이 센터급 병원에 안 계시기 때문에 그 2~3명이 하던 일을 2차 병원에 오면 저 혼자 다 해야 하거든요. 2차 병원급의 업무가 좀 많이 가중돼서 내려온 상황입니다.
응급 처치를 마친 중증 환자는 대학병원이나 더 큰 2차 병원으로 옮겨야 하지만, 받아주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녹취> 김희상 충주의료원 응급실장
예, 안녕하세요. 여기 충청북도 충주의료원 응급실입니다. 폐부종에 대사성 산증 동반된 82세 남자 환자분 전원 가능할까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녹취> 김희상 충주의료원 응급실장
- 충북대도 ICU(중환자실)가 없대. (간호사: 네) 하.. 청주 성모 해볼게요. (간호사: 네)
- 성모는 신장내과가 안 된대요. (간호사: 네) 효성에 해볼게.
- 효성병원 안 된대. (간호사: 네. 왜요? 왜 안 된대요?) 거기 내과의사 보기가 힘들 거 같대.
- 아주대 안 된대. (간호사: 왜요?) 자기네 추적 관찰 안 한 지 2년 넘었고, 이쪽 권역에서 해결을 하라는데? 휴. 해결이 안 되는데 어떡해...
2시간 반 동안 병원 10곳에 전화를 돌린 뒤에야, 120여km 떨어진 대전의 대학병원으로 환자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김희상 충주의료원 응급실장
청주에 있는 큰 2차 병원들도 예전에 여력이 되어서 잘들 받아주셨는데, 요새는 이제 그쪽에도 배후과 과장님들이 많이 좀 체력적 소진이 오셨는지 못 받는 경우도 많이 있더라고요.
받아주는 병원을 더 찾기 어려운 환자들도 있습니다. 아픈 아기들입니다.
<녹취> 김희상 충주의료원 응급실장
성인들은 그나마 어느 정도 이렇게 병원을 찾아서 가게 되는데 나이 2살이나 0세, 12개월 미만 이런 애들은 요청 병원 수가 10개, 5개 이런데 다 미선정이죠. 소아가 갈 데가 없어요. 받아주는 데도 없고. 특히 충북은.
밤 10시부터 아침 8시 30분까지. 꼬박 10시간 반 동안 쉬는 시간 없이 환자 26명을 진료했습니다.
<인터뷰> 김희상 충주의료원 응급실장
업무 부담이 많아지셔서 (사직을) 고민하시는 선생님들도 있고, 요새는 수도권 쪽에 응급의료 의사에 대한 수요도 많고 하기 때문에. 좀 흔들리시는 과장님들도 있습니다.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수도권 쪽은 어떻게 버티게 되고, 지역 의료는 계속 더 무너져가는 그런 상황이 될 걸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 ‘응급실의 응급실’ 권역의료센터도 흔들…출구는 어디에
서울의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서울에서 가장 큰 중증 외상 치료센터이지만, 남은 의사는 기존 18명 중 10명 정돕니다.
하루에 5~60명씩 밀려드는 중증 환자를 응급의학과 교수 한두 명이 돌아가며 치료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수진 / 고대안암병원 권역의료응급센터장
경증 환자 10명, 20명 보는 것보다 중증 환자 1명을 보는 데 전문의 인력들이 더 많이 필요하거든요. 저희 내부적으로도 환자를 볼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고 배후 진료과도 진료 역량이 지금 부족하고 달리는 상태이고. 이런 상태에서 저희가 환자를 받기만 한다고 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가 없거든요.
<녹취>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지난 2월 6일)
2025학년도부터 의과 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하여 현재 3,058명에서 5,058명으로 확대합니다.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녹취> 김태우 / 당시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 (지난 2월 17일)
의사협회와 회원의 역량을 모두 결집해 투쟁에 나설 것을 엄숙하게 선언한다.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의대생들은 휴학계를 냈습니다.
결국 조정을 거쳐 내년도 증원 규모는 1,509명으로 일부 줄었지만, 전공의 10명 중 9명은 일터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전국 180개 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하는 의사 수는 지난해 2천 3백여 명에서 4백 명 넘게 줄었습니다.
이달 들어선 결국 서울에서도 응급실 야간 운영을 일부 중단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나왔습니다.
<인터뷰> 남궁인 /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원래 25명의 의사들이 하던 일인데, 이거를 8명, 야간 당직은 7명만 서는데 이 7명이 할 수가 없어요. 의료진은 이제 번아웃이 다 온 상태고. 사실 7개월도 많이 버틴 건 데다가 저희가 이렇게 제한 진료하는 것 자체가 이미 못 버틴다, 이거는 이대로는 지속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엄청 힘든 결정이었던 거고요.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복귀 조건으로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의대 증원 계획 백지화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녹취> 박재일 / 서울대학교병원 전공의 대표 (지난 5일)
정부는 의료 왜곡의 본질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그릇된 의료 정책만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여야의정협의체에서 의료 공백 해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지만, 의사단체는 내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와 정부의 사과가 먼저라고 맞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녹취> 최안나 /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지난 13일)
의사 수 증가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사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녹취>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지난 22일)
2025년도 입학 정원 같은 경우는 이미 수시 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이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경이 어렵다고 생각이 들고요.
정부는 당장 급한 문제인 응급실의 환자 수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지난 9월 22일, KBS 일요진단 출연)
배후 진료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주요한 수술이나 마취에 대한 수가 인상도 하고요. 그 다음에 병원 간에 이송 전원 체계도 점검을 해서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실적으로 전공의들의 복귀 없이는 응급실 정상화가 요원합니다.
<인터뷰> 남궁인 /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저랑 같이 일을 하던 의사들이 대체로 전공의였는데요. 결국은 이들이 졸업해서 전문의가 돼서 또 많은 환자를 보는 거고 이 체계대로 진행이 돼야 의료 체계가 붕괴가 안 되고 그나마 살아 있는 거거든요.
<인터뷰> 엄태환 / 을지대 응급구조학과 교수
평행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라 그동안은 어쨌든 그 위기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진짜 응급 환자, 잠재적 응급 환자에게 자원을 분배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선택과 집중 과정에서 피해자 발생을 최소화해야겠죠.
■ 시간이 없다…“국민들 생명이 우선 아니겠어요?”
밤 9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남궁인 교수가 출근길에 오릅니다.
오늘은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 반까지 10시간 반 밤샘 당직을 서야 합니다.
<인터뷰> 남궁인 /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제가 출근을 하면 저희 지역에서 가장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이 옵니다. 가장 아픈 사람들 도와주는 일을 계속해 왔어요. 그것들이 전 좋아요. 그래서 이 센터에서 일을 하고 남아 있는 거죠.
오늘도 밤새 응급실을 지키는 의사는 남 교수 한 명입니다.
<인터뷰> 남궁인 /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의사가 없어요. 진짜 순전히 의사가 없어서 환자분들이 더 아프고 더 고통받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힘이 닿는 데까지 다 환자를 받아서 일을 해야 하는 건데 그게 눈앞에서 안 되는 게 보이니까 그게 안타깝죠.
남아 있는 의료진이 언제까지 응급 의료 체계를 지탱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인터뷰> 이진희 / 응급실 내원 환자
환자들이 몸이 불편하거나 아플 때는 병원에서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잖아요. 정부나 의사 선생님들이나 다 한 발씩 양보해 가지고, 우선 국민들의 생명부터 먼저 지켜야 돼요. 그게 제일 우선 아니겠어요?
<인터뷰> 엄태환 / 을지대 응급구조학과 교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협상의 여지는 줄고 서로 멀어지지 않을까. 의료계는 의료계 나름대로 정부안과 점점 멀어지지 않을까. 협상이 빠르면 빠를수록 더 좋지 않을까. 마치 응급 환자가 시간이 중요한 것처럼, 똑같은 거라고 봅니다.
취재기자: 김채린
촬영: 김민준 이창준 조선기 홍성백
영상편집: 최정연
그래픽: 장수현
자료조사: 김예은 한혜민
조연출: 유화영 김영일
촬영 협조: 충주의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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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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