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민심의 약한 고리 파고드는 트럼프
가짜뉴스 확인됐지만 멈추지 않아
녹록지 않은 경제상황, 안전 불안
탓할 대상 찾아 교묘히 여론 호도
미국 워싱턴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앨버트 비어슈타트(1830∼1902)의 그림 ‘버펄로의 마지막(The Last of the Buffalo, 1888-1889)’은 가로 3m, 세로 1m80㎝의 크기만큼이나 분위기도 압도적이다. 서부 개척 시대에 대자연의 웅장함을 표현한 ‘로키산맥 화단’의 일원이었던 비어슈타트의 이 그림에서 원주민 남성, 즉 ‘인디언’은 웅장하고 거친 대자연을 배경으로 말을 타고 창으로 버펄로(들소의 일종)를 찌르고 있다. 주위에는 그와 함께 있는 동료들이 사냥한 것으로 추정되는 버펄로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자체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난 22일(현지시간) CBS 여론조사(등록유권자 3129명 대상, 18∼20일 실시)에서 37%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말이 ‘아마도/확실히 사실’이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오하이오 경찰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하고 공화당 소속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주지사 역시 “증거가 없다”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이 말을 믿는 미국인들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넘는다는 것이다.
이후 공화당 집회 취재를 가보니 실제로 이를 믿는 사람이 많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이 이들에겐 튀는 것도 아니었다. 백인 공화당 골수 지지자들만 ‘이민자 괴담’을 믿는 것도 아니었다. 아시아계 이민자 중에서도 이 말을 믿는 사람이 있었다. 이들과 얘기해 보니 실제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느냐 아니냐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의 상황, 특히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탓을 돌릴 대상이 필요하고, 안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탓을 돌릴 대상도 필요하다. 이 대상은 때로 이민자·외국인이기도 하고 이에 우호적인 조 바이든 행정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심리를 교묘하게 잘 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말은 이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논란이 뒤따를 말들을 거침없이 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보가 아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훨씬 논리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TV토론 뒤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해리스 부통령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고 있으며, 최근 일부 경합주에선 지지율이 오히려 올라가기까지 하는 것엔 이유가 있다.
버펄로를 사냥하는 원주민 그림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오랜 기간 역사화처럼 여겨졌다.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말을 일상으로 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도 10년 가까이 미국 정치에서 건재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하는 말들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들이 원하는 말을 충실하게 하고, 이로 인해 이들이 결집한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생명력 역시 훨씬 더 길 수 있다.
홍주형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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