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김정은 갖고 노는 MZ들
2002년 대선 때 ‘노풍(盧風)’은 연구 대상이었다. 오빠 부대 정도로 여겼던 팬덤이 ‘노사모’로 커지더니 정당을 흔들었다. 바닥에선 인터넷으로 무장한 하위 문화(sub culture)가 작동했다. 기성 문화에선 저급하다 여겨졌던 합성과 패러디가 놀이처럼 번졌다. 진원지는 1999년 카메라 사이트로 시작했던 ‘디시인사이드’였다. 정치인 얼굴을 이용한 각종 합성 사진을 퍼 날랐다. 좌파들은 기술 습득과 활용에서 우파를 압도했다.
▶2000년대 초반은 정치인 합성 사진 전성기였다. 홍준뽀(홍준표), 구시민(유시민), 서동영(정동영) 등이 여의도 패권을 두고 다툰다는 시리즈 패러디물까지 등장했다. 노무현 정권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얼굴과 노출 여배우 사진을 합성한 사진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와 청와대 비서관이 직위 해제까지 됐다. 작성자가 노사모 출신이라 정치 문제가 됐다.
▶유튜브 등장과 함께 패러디 소재도 사진에서 동영상으로 옮겨졌고, 정치 패러디에서도 좌우가 균형을 이루게 됐다. 그래도 풍자는 항상 권력을 비판 대상으로 하고, 창작은 젊은 세대가 주도한다. 지난 정부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이 패러디 대상이다. 그런데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고, 게다가 모든 웃음 유발 요소까지 갖춘 절대 권력자가 있으니 바로 북한의 김정은이다. MZ세대가 이런 좋은 소재를 놓칠 리 없다.
▶뉴진스 하니가 흘러간 일본 노래 ‘푸른 산호초’를 불러 화제를 불렀다. 한 유명 유투버는 이 노래를 김정은의 ‘돼니-붉은 산호초’로 합성했다. 코러스로 등장한 김여정·리춘희도 웃기지만, 일본 가사처럼 들려도 실제는 북핵을 풍자하는 한국어 가사가 압권이다. 원래 가사 “와타시노 코이와(나의 사랑은)”는 “왔다 신호! 거리와”로 “아오이카제(푸른 바람)”는 “아오지(탄광) 가지”로, “아노 시마에(그 섬으로)”는 “압력 심화해”로 바꿨다. 최근엔 넷플릭스 ‘흑백 요리사’에 김정은·김여정이 요리사로 등장하는 ‘흑백 료리사’를 올렸다.
▶2020년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는 “북한 지도부가 추잡한 합성 사진 삐라에 분개했다”고 말했다. 일부 탈북자들이 성인물 사진에 리설주를 합성한 대북 전단을 보낸 걸 문제 삼았다. 수십만 구독자를 둔 MZ 유튜버들이 지금도 어디선가 부지런히 김정은 패러디를 만들어 업로드 하고 있다. 이념·정치 다 떠나 그냥 기발하고 재미있다. 김정은이 휴전선 대북 확성기에 경기를 일으킨다는데, MZ들이 만든 패러디 동영상은 그보다 훨씬 위력이 큰 ‘사이버 확성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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