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고 걷고 1시간, 건강도 주웠다
시민·환경단체 등 150여명 청계광장 주변에서 활동
화단·하수구 등에 ‘무단투기’된 담배꽁초 치워 말끔
“지루하지 않은 운동…줍깅, 미래 위한 적금 같은 것”
지난 26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진행자의 외침과 함께 심상치 않은 복장의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저마다 한손에는 비닐봉지, 다른 손에는 기다란 집게를 들고 있다. 벙거지 모자를 눌러쓴 이들. 운동화 끈을 고쳐매는 사람도 여럿 보인다. 얼핏 ‘넝마주이’처럼 보이는 이들의 정체는 바로 ‘줍깅’에 나선 시민들이다.
‘줍깅’이란 가볍게 걸으며 주변의 쓰레기를 주워 건강과 환경을 함께 지키는 활동을 말한다. 2023년 5월 서울시는 ‘줍깅 활성화 조례’를 만들었다. 이날은 조례 제정 후 처음 ‘줍깅 캠페인’이 열린 날이다.
서울시 자원봉사 사이트를 통해 캠페인 참여를 희망한 시민들, 환경시민단체 관계자들, 회사 차원에서 줍깅을 권장하는 대상·써머셋팰리스 직원 등 150여명의 참가자들이 집게와 비닐봉지를 들고 광장에 모였다. 줍깅에 앞서 간단한 ‘몸풀기 댄스’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4개 조로 나뉘어 청계광장 주변 무교로, 다동길 코스를 1시간가량 도는 줍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덟 살(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데리고 캠페인에 나섰다는 A씨는 “아이가 학교에서 기후환경 교육을 받고 난 이후 이런 활동에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며 “뭔가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찾다가 이 캠페인을 알게 돼 참여했다”고 밝혔다.
쌍둥이 동생과 함께 캠페인에 나온 B씨는 “평소에도 동생과 청계천 등지를 걸으며 줍깅을 하곤 한다”며 “줍깅은 동생과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생활”이라고 말했다.
해외 유명 대도시들과 비교하면 서울 도심은 상대적으로 깨끗한 편이다. 매일 새벽같이 거리가 청소되고, 시민들은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줍깅을 한다고 뭉텅이로 쓰레기를 줍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도심 줍깅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또 줍게 되는 쓰레기가 바로 ‘담배꽁초’다. “도심 무단투기 쓰레기의 80%는 꽁초라고 봐야죠.” 함께 줍깅을 하던 서울시 관계자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체감은 그 이상이다. 걸으며 둘러보니 곳곳에 ‘은폐된’ 꽁초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로수 밑동, 입간판 아래, 화단 등 평소 잘 눈에 띄지 않는 곳곳에 꽁초가 숨어 있다. 최악은 도심 배수구다. 빗물과 생활하수가 흘러들어야 할 배수구마다 꽁초가 가득하다.
“이러니까 폭우가 내릴 때 도로에서 물이 잘 안 빠지지.” 한 참가자가 혀를 차며 한 배수구 뚜겅을 열어젖혔다.
‘판도라의 상자’가 따로 없다. 집게로 줍기보단 삽으로 퍼내야 할 정도다. 참가자 여럿이 달라붙어 한참을 씨름한 끝에 말끔해졌다. 꽁초를 줍는 줍깅 무리를 마주친 한 흡연자는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담뱃불을 끄고 자리를 떠났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는 흡연자들 사이로 줍깅 참가자 몇몇이 접근해 바닥에 떨어진 꽁초를 줍기 시작하자 일부 흡연자들이 불쾌한 내색을 비치기도 했다.
한 시간 남짓 줍깅을 하다보니 참가자들의 비닐봉지가 꽁초로 수북해졌다. 스마트폰 만보기를 보니 시작 전 2500보 수준이던 걸음 수가 1만1000여보를 가리키고 있다.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B씨는 “줍깅을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움직이게 돼 지루하지 않게 운동을 하게 된다”며 “다음 세대에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줍깅은 또 한편으로는 미래를 위한 ‘적금’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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