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미제 사건도 ‘솔선수범 판결’… “신속재판 기조 탄력” [심층기획-‘법원장 재판 직접 참여제’ 순항]

박진영 2024. 9. 2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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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안팎 긍정 평가 많아
대법, 예규 바꿔 법원장 참여 근거 마련
일부 법원선 제도 시행 앞서 자체 도입
정보공개 소송 6년 7개월 만에 선고 등
진척 없던 사건 속속 처리 ‘순기능’ 발휘
일각 “재판 지연 근본적 해법 아냐” 지적
법관 증원·고법 부장 승진제 등 요구도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에서 시행된 법원장 재판 직접 참여제인 ‘법원장 재판’은 신속한 재판을 통해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법원 내부에선 법원장 재판을 보다 다양화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함께, 재판 지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관 증원,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폐지된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와 같은 보상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연합뉴스
◆앞서 시행한 법원들도

29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법원장 재판 직접 참여제는 올해 3월1일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대법원은 2월1일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를 개정해 그 근거를 마련했다. ‘각급 법원장은 사법행정사무 이외에 적정한 범위의 법정 재판 업무를 담당함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사법행정사무와 대외 업무 부담을 고려해 비법정 재판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법정 재판 업무는 민사·형사·가사·행정 사건 등 법정에서 구두변론·심문·증거조사 절차 등을 거쳐 처리하는 사건에 대한 재판 업무다. 비법정 재판 업무는 조정, 가족 관계 등록 비송 등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서면심리 방식이나 비형식적 절차에 의해 처리하는 사건이 해당된다.

이에 따라 전국 37개 각급 법원장은 단독 재판부를 하거나 합의부에 참여해 각종 재판 업무를 처리 중이다. 법원장 재판부들은 7월31일까지 1·2심 본안 사건 2324건에 기타 사건 2만1599건 등 총 2만3923건을 처리했다. 기타 사건엔 개명,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등 가족 관계 등록 비송, 재정신청, 법인 파산·회생 신청, 항고 등이 포함된다.

제도 시행 전에 법원장 재판을 자체적으로 도입한 법원들도 있다. 서울회생법원장은 2021년 2월부터 중요 사건이나 부채가 3000억원 이상인 회생·파산 사건을 맡아 왔다. 가족 관계 등록 비송 사건을 처리해 온 법원장들도 적지 않다. 서울남부지법과 서울북부지법, 창원지법, 청주지법이 대표적이다.
◆최장 7년 된 미제 사건 처리

원숙한 재판 능력을 가진 법원장들이 재판 업무를 맡으며 법원의 장기 미제 사건이 빠르게 처리되는 순기능이 발휘되고 있다. 법원장 재판부가 판결을 선고한 사건들 중 최장기 미제는 서울행정법원의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소송 1심이다. 소송이 제기된 지 6년 7개월 만의 판결이었다.

A씨는 2017년 9월 법원행정처에 ‘법관 등 상대 부당소송 대응 매뉴얼’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거부당하자 같은 해 11월 소송에 나섰다. 2018년 변론 기일이 진행된 뒤 A씨가 수차례 기일 변경을 신청해 진척이 없었다. 김국현 법원장이 재판장인 서울행정법원 행정9부는 올해 4월 변론을 종결하고, 6월 “재판의 심리·결과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없고,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행정처장이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다.

서울동부지법의 박범석 법원장이 재판장인 민사20부는 지난 7월 접수일이 6년 6개월 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을 원고 패소 판결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운영·관리하는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냉동 창고 등을 운영하는 B사가 2018년 1월 공사를 상대로 27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냉동 창고 감정 절차 등 때문에 재판이 지연됐다.
판사들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뉴스1
◆“사건 적체 해결엔 ‘한계’”

판사들 사이에선 법원장 재판 시행 이후 신속한 재판 기조가 탄력을 받는 등 긍정적 효과가 크다는 평이 나온다. 수도권 고법에 근무하는 A 부장판사는 “법원장이 처리한 건수도 중요하지만 그 상징성이 중요하다”며 “‘깡치 사건’을 직접 처리하면서 솔선수범을 보이는 게 후배 판사들에게 주는 효과,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깡치 사건이란 사안이 복잡해 품이 많이 드는 사건을 뜻하는 은어다. 다만 A 부장판사는 “상징적 차원이라 판사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긴 한 것 같다”고 했다. 깡치 사건을 법원장에게 줘 버린다고 하는 판사도 일부 있다는 설명이다. 재경 지법의 B 판사는 “다른 판사들도 신경 쓰고 신속히 재판하려는 분위기는 있다”고 말했다.

사법 행정적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는 평가다. 한 고법의 C 판사는 “법원장이 법원장실에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한다”며 “요즘 법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보니 애로 사항도 잘 해결되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법원장 재판 확대에 대한 의견은 갈린다. C 판사는 “법원장 재판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법정의 현재 분위기를 법원장이 보고 들을 수 있는 법정 재판 업무를 많이 담당해 종류가 다양한 사건을 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언했다.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A 부장판사는 “근본적으로는 법관 수를 늘려야 할 것이고, 과거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처럼 보상이 뒤따라야 자발적인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이어 “지금 고법 부장판사들이 많은데, 이들을 법원장으로 보내는 것도 좋은 수가 되리라고 본다”면서 “평생 재판을 해 온 만큼, 법원장으로 가서도 재판을 잘할 수 있고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D 부장판사도 “법원장이 재판을 하고 구성원이 열심히 하더라도 한계는 있다”며 “법원의 한계 상황을 개선하지 않고는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장으로서 사법 행정에 더해 사건을 심리하기 쉽지 않다”며 “지방법원에선 법원장 단독으로도 할 수 있는 재판부가 많지만, 고등법원은 두 배석판사와 함께 심리해야 해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진영·이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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