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뉴라이트 현상, 거대한 퇴행과 그 위험

기자 2024. 9. 2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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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트럼프가 두 차례 암살 위기에도 살아남았으니 명줄이 참 길다. 전환시대 복잡다기한 이중운동(폴라니)의 전개 속에서 선거의 여신이 그를 돕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윤석열은 누가 돕고 있나? 퇴진운동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국정 긍정 평가가 20%로 추락했으니 이미 심리적 탄핵 사태다.

넓은 의미로는 트럼프도, 윤석열도 극우 뉴라이트에 속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둘 다 중도 기득권 정치의 실패가 낳은 위험한 반동적 역류다. 감세와 규제 완화, 민영화가 주된 경제정책 기조다. 약자를 혐오하며 ‘자유사회’주의 대 공산전체주의의 진영논리를 마구 구사한다. 호전적이고 철부지 아이처럼 전쟁을 불장난같이 여긴다. 세계 수위의 기후악당국가에 살면서도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거대 양당을 견제할 유력한 제3 정당의 부재 속에서 극우 지도자가 큰소리치는 모양새도 비슷하다.

하지만 트럼프가 떠오르는 포퓰리스트 뉴라이트라면 윤석열은 추락하는 수구적 뉴라이트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와 보호주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챙기려고 혈안이다. 또 러스트벨트 흙수저 출신으로 ‘개천 용’이 된 밴스를 동반자로 선택할 만큼 제법 실용주의적 융통성도 보일 줄 안다. 심지어 통 크게 북한의 김정은과도 만나 대화·소통하고 거래할 만큼 대단한 ‘상인적 현실감각’(김대중)도 보인 바 있다. 한반도 평화의 입장에서는 해리스보다 트럼프가 낫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대중이 호응할 어떤 무엇을 트럼프는 가졌다.

트럼프가 신자유주의 퇴조기를 타고 나름 대중의 호응을 얻는 신종 포퓰리즘 극우라면, 윤석열은 거꾸로 가는 구닥다리 극우다. 방종적 특권 시장, 부자 감세, 불로소득, 반노동, 검찰독재, 언론공작, 수사 외압, 권력 사유화, 불법비리, 선택적 공정, 친일매국,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 공천개입 등 현란하게 퇴행적인 것들, 구린 냄새 물씬 풍기는 구태들을 쓸어 담은 타락한 극우다.

나라를 망치는 윤석열에게서 흙수저 친화적 포퓰리즘 요소는 흔적도 찾기가 어렵다. 노조를 때려잡고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을 부채의 늪에서 허우적대게 한다. 반면 부자 감세로 불로소득을 향유할 특권적 자유와 안전을 보장한다. 실질임금의 감소, 긴축재정, 불평등 심화로 민생 고통과 내수 침체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세수결손이 30조원이나 된다고 한다. 대응책이라곤 집값 상승에 목을 매는 것뿐이다.

한국의 올드한 뉴라이트가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것은 주권국가로서 한국의 자존과 한국 국민의 아픈 상처가 전혀 아니고 교활한 일본의 요구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고 일본의 ‘피로감이 쌓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친일매국이 따로 없다. 게다가 줏대 없이 미·중 패권 다툼에 말려든 반중국 기조로 한국 경제 국익에 대타격을 자초한다. 나아가 평화가 위험하다. 지금껏 북한과 한번도 대화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 흡수통일론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대북전단 살포와 쓰레기 풍선 맞대응도 격화하고 있다.

윤석열은 3대 역사기관장, 심지어 독립기념관장에 뉴라이트 인사를 앉혔을뿐더러 정부 주요 공직에도 그들을 심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에 <반일 종족주의> 공저자 김낙년이 들어선 것은 주목거리다. 그는 쌀 수출이 있을 뿐 쌀 수탈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윤석열과 궁합이 잘 맞는 셈이다. 이처럼 뉴라이트 전성시대를 열어놓고도 “뉴라이트가 뭔지 잘 모른다”고 한다. 기만전술 또는 부끄러움의 표현일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윤석열 정부를 통해 국가권력이 반동적 극우세력 수중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 정치 전반은 물론 합리적 보수에도 중대한 적신호다. 가장 위험하고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트럼프와 윤석열 둘 다 모두를 위한 사회생태 전환의 길을 막는 실로 위험한 괴물이지만, 나는 트럼프에겐 있고 윤석열에겐 없는 세 가지, 즉 자국우선주의, 대중에 다가가는 융통성, 상인적 현실감각에 대해 말했다. 트럼프는 대중 지지를 얻어 위험하고, 윤석열은 대중 지지가 바닥이라 위험하다. 누가 더 위험할까? 만약 윤석열이 트럼프처럼 대중이 지지하는 극우 포퓰리스트였다면 어찌 됐을까? 그 가능성과 기회는 열려 있었지만 죽었다. 그만큼 자기 동굴에 유폐된 윤석열은 바보스럽고 무능하며 이전의 박근혜 이명박도 다를 바 없다. 눈뜬 보수라면 뼈아파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의 시간, 대중이 호응하는 트럼프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때는 정말 무서울 텐데.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알리라.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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