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전략도 용기도 없는 한동훈식 차별화 정치

박영환 기자 2024. 9. 29.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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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마음에 반응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려는 모습을 보여드리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7·23 전당대회 직후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한 말이다. 국민의힘 당원들은 여당 수장을 맡아 총선에서 역대급으로 패하고도 몇달 만에 다시 당대표에 나선 그를 받아들였다. 아마도 여당의 변화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기 없는 대통령에게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여당으론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달이 넘게 지난 지금 한 대표에 대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여론에서도 확인된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과 연동돼 있다.

한 대표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아니라 민심에 맞춘 변화를 공약하며 여당 대표가 됐다. 출발부터 그의 목표는 윤심을 넘어 성공적인 차별화 정치를 해내는 것이었다. 물론 여당 대표가 임기 반환점도 돌지 않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견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차기 권력을 노리는 입장에서 현재 권력의 ‘보복’이 걱정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환경만 탓할 수는 없다. 정치인 한동훈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리더십의 한계도 점점 선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훈 효과’는 없고 ‘한동훈 리스크’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 대표의 차별화 정치에는 대안도 전략도 용기도 안 보인다.

지난 24일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의 최대 관심사는 의대 증원 관련 의·정 갈등과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여권의 입장 정리 문제였다. 한 대표는 이미 수시모집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재조정은 불가하다는 정부와 달리 이 문제도 열어놓고 의료계와 협의하자고 강조했다. 그런데 한 대표는 2025학년도 증원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수험생들의 혼란에도 증원을 조정하자는 건지, 조정이 필요하면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대안이 없다. 민심에 가까이 가도록 윤 대통령을 설득할 전략도 안 보인다. 만찬을 앞두고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대통령실은 한 대표가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반발했다. 독대가 불발되자 한 대표는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통해 재차 독대를 요청하고 이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결국 한 대표는 여론을 전달하려 하는데 윤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는 모양이 됐다. “검사 출신 두 사람의 한심한 정치”(유승민 전 의원)라는 비판만 받았다. 전략이 없으면 용기라도 있어야 한다. 고기만 내놓고 명색이 당대표인데 인사말 한번 안 시킨 윤 대통령의 협량함은 문제지만, 20년 지기 선배에게 먼저 말 한마디 못 꺼낸 한 대표도 잘한 건 없어 보인다.

차별화는 윤심과 민심 사이에서 눈치 보며 줄타기해서 되는 게 아니다. 민심이 심상치 않으면 한발 여론 쪽으로 옮겼다가, 윤 대통령 격노가 두려우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런 식으로는 차별화에 성공하기 어렵다. 한 대표는 지난 6월23일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 종결 여부를 특검 발의 조건으로 달지 않겠다”며 특검법 발의를 약속했다. 하지만 두 달 후인 8월26일엔 “공수처 수사 결과를 보고 특검 여부를 정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도 완전 틀린 생각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석 달이 넘도록 약속한 제3자 특검법 발의는 감감무소식이다. 차별화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보여줄 때 성공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전략과 용기가 필요하다.

한 대표 앞에 또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 문제다. 죄를 지었으니 특검을 거부하는 것이라던 윤 대통령은 배우자 김 여사 의혹 관련 특검에 대해서는 두 번째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명품가방 수수, 주가조작·공천개입 의혹 등으로 김 여사 리스크는 여권을 짓누르고 있다. 여론도 특검을 원한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9월 4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김 여사 특검 찬성은 65%, 반대는 24%로 집계됐다. 중도층(73%)은 물론 보수층에서도 찬성이 47%로 반대보다 많았다. 한 대표는 일부 친한계 의원들의 주장처럼 윤 대통령이 사과하는 정도로 김 여사 리스크를 털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밝혀야 한다. 한 대표의 차별화는 본인이나 윤 대통령이 아닌 민심이 평가하는 것이다. 한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민심의 파도에 올라타자”고 했지만 지금 같아서는 윤 대통령과 운명공동체가 되어 그 파도에 휩쓸릴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한 대표가 말한 대로 민심을 이기는 정치는 없기 때문이다.

박영환 정치부장

박영환 정치부장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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