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추석 연휴, 응급실 방문은 왜 줄었나?
“아픈 데 없지? 아프면 안 된다!” 지난 추석 연휴기간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들었던 말이다. 약간의 공포와 불안이 섞여 묘하게 동질감을 느꼈다. 본인과 가족이 경험한 응급실 뺑뺑이와 병원 실태를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것이 아픈데 치료받지 못한 경험이다. 특히 어린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불편함이 컸다. 대화가 오가면서 분노와 한숨이 함께 터져 나왔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추석 연휴 생선전 같은 것은 드시지 말라. 벌초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혹시나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거나 벌초로 인한 사고가 나면 대책이 없다는 얘기였다. 추석에 생선엔 손도 대지 않았다. 국민들은 추석 연휴 동안 응급실을 가지 않기 위해 각자 자구책을 마련했다. 코로나를 경험한 노련함 덕분인지 스스로 조심하고 자제했다. 게다가 응급실 본인부담금도 90%까지 올랐다.
이런 노력 덕분에 추석 연휴기간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하루 평균 2만7505명으로, 지난해 추석(3만9911명)과 비교해 약 31%나 감소했다. 아픈 사람이 갑자기 줄어들지 않는다. 이런 통계는 응급실을 방문하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거나, 고통을 참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터지는 법이다. 25주차 임신부가 양수가 터졌으나 75군데나 병원 이송을 거절당했고, 부산 30대 여성은 경련과 의식장애로 92번이나 응급실을 찾다가 결국 숨졌다. 이런 뉴스는 화젯거리도 되지 못한 채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가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대형 수련병원 34곳 응급의학 전문의 89명 중 62명(69.7%)이 추석 연휴기간 전후(13~20일) 최대 12시간 이상 연속 근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희생으로 추석 연휴를 큰 혼란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정부는 자랑할 것이 아니라 이런 불편함을 감수한 국민과 의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런데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8일 “이번 추석 연휴에 발생한 고위험 분만과 신생아 보호, 수지접합 수술과 같은 필수의료의 부족 문제는 전공의 이탈로 인해 새롭게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라고 말했다. 이 모든 사태가 전공의들이 이탈해서 발생했음에도 태연하게 다른 곳에 원인을 돌리고 있다. 어이가 없고 분노가 더욱 커진다.
소방청은 지난 12일 구급대원들에게 언론 접촉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이 알려지면서 입틀막 논란이 발생했다. 소방청은 ‘구급 현장 활동 관련 언론 대응 유의 사항 알림’ 공문에서 “현장 활동 관련 영상물, 음성물 등의 무단 유출 및 개인보관 금지” 등의 내용을 지방자치단체에 내려보냈다.
최근 뉴스에서 터져 나오는 응급실 뺑뺑이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나온 공문이다. 소방관들의 입을 막겠다는 것이다. 구조대가 환자를 위해 응급실을 찾는 목소리가 불편하게 느껴진 것일까.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는 “소방청이 응급의료 현장의 실상을 외면하고, 소방관의 언론 접촉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아전인수 정책과 입틀막은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명절은 끝났지만 국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의대 증원 논란은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전공의들은 응급실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희망하던 지인의 자녀는 최근 강남에 있는 병원으로 취업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더욱 큰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아 불안하다.
정권의 위기는 결국 국민들의 불안감에서 시작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불안감이 임계치를 넘어갔음을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정권의 위기에서 끝나지 않고 국가의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자랑했던 K의료는 대혼란의 초입에 서 있다. 회복하기 힘든 방향으로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정신 차리길 바란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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