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아의 조각보 세상]대통령의 만찬
크게 흔들리는 국민의 의식주
정부 신뢰도 바닥으로 치달아
대통령의 만찬은 협력의 자리
야당·시민단체 만나 들으시라
초대 안 하면 국민이 부를 것
처음엔 신선했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60대 남성의 특기가 스테인리스팬에 계란말이라니. 얼치기지만 주부 경력 30년이 넘은 나도 스테인리스팬은 쓰기 쉽지 않은데. 잠깐이었지만, 20대 대선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프라이팬을 든 윤석열 후보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9월24일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열렸다는 국민의힘 지도부 초청 만찬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인 듯하다. 한동훈 대표가 여전히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밥 먹는 데 너무 충실한 나머지 대화를 잊어버린 탓일까. 술 마시지 않는 한 대표를 고려해 오미자차로 건배를 하고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마음 씀씀이가 돋보였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었던 것 같다. 체코 순방 성과에 대한 설명과 국정감사에 대한 걱정이 전부였다니.
‘만찬’, 손님을 초대해 함께 먹는 저녁식사가 뉴스거리가 되는 이유는 ‘대통령의 만찬’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로서 국정을 논하기 위해 필요한 인사들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고언(苦言)과 협력을 구하는 자리다. 대통령의 모든 시간은 국민을 위해 써야 하는 귀한 것이기에 허투루 사용할 수 없고 더구나 예고된 공식 행사이므로 지난 만찬에도 꼭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고, 그것을 풀어야 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그날 만찬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금 국민의 의(醫)·식(食)·주(住)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 속에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을 찾아다녀야 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지난 추석에는 응급실 사정을 걱정해 아예 부모님 산소의 벌초를 미룬 집들도 적지 않았다. 하루하루 생명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에서 왜 ‘2000명’을 사수해야 하는지 답답한 국민들의 마음속에서는 세계적인 의료 선진국가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물가가 잡히고 있다는 정부 발표와는 달리, 장바구니 물가 심리는 여전히 불안하다. 추석 명절 내내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한 단에 1만원씩 하는 시금치값에 놀란 주부들의 질문이 빗발쳤다. ‘잡채에 시금치 대신 뭘 넣으면 좋으냐.’ 지난주에는 배추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중국산 배추를 수입하겠다는 대책이 보도됐다. 아이들에게 김치마저 중국산을 먹여야 하냐는 부모들의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이 지연되면서 지난 6~7월 부동산 시장에서는 연일 신고가 행진이 계속됐다. 9월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가 시행되면서 주춤하고 있지만, 서울의 아파트값이 언제 다시 튀어오를지는 알 수 없다. 지금 한국의 청년세대는 집값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영끌한 청년들은 대출받은 원리금 상환의 무게에 짓눌리고, 가난한 청년들은 내 힘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는 절망감을 품고 산다.
정치적인 상황도 심각하다. 매일 눈뜨면 유튜브는 물론 레거시 미디어에서도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천 개입, 대통령 관저 공사, 체코 순방 시 일간지 블레스크의 부정적인 보도 등 자고나면 터져 나오는 의혹들에 국민들은 지쳐간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윤 대통령의 뉴스에는 유난히 먹을거리들이 자주 등장한다. 부산의 시장에서 재벌 총수들과 먹었다는 떡볶이부터, 지난 5월 기자들과의 만찬에서 고기를 굽고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대접했다는 이야기, 7월 국민의힘 지도부와 함께한 삼겹살 만찬까지. 그렇다면 대통령은 국민들의 식탁에는 무엇이 오르고 어떤 이야기가 관심사가 되는지 알고 있을까? 시장에서 상인들과 나누는 몇 마디 인사나 미리 약속된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민생토론회의 짧은 토크로 국민들의 일상을 알 수 있다고 여긴다면 지나친 낙관이다.
대통령이 국민들과 만나고 싶다면,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 조국 대표부터 만나시라. 자주 정례적으로. 만찬이 아니면 어떠랴. 30여년 전 김영삼 대통령처럼 간단한 칼국수 점심도 좋을 것이다. 야당 의원들을 만나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여성단체와 청년단체를 초대하시라. 가급적 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만나 소통하시라.
대통령의 만찬에 국민들을 초대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대통령을 부를 것이다. 그곳은 식탁이 아닐 것이다. 그 전에 국정감사라는 여의도의 정글을 지나겠지만, 이해와 설득, 협상에 실패한다면 국민들은 다른 곳으로 그를 불러낼 것이다. 그곳은 아마도 광장이 될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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