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2016년 광장’의 교훈
대통령이 몹시 수상하니 2016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친박의 농단, 옥새 파동으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참패한다. 조선일보는 “여당이 연정·합당 등을 통해 정치판을 통째로 흔들거나 모든 것을 내주겠다는 각오라도 하지 않으면 현재 국면을 풀어내기 어렵다는 점은 자명하다”(4월21일자 사설)며 위기의 신호를 울린다.
그러나 변화는 없었고 친박계와 비박계 간 갈등은 더 첨예해진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세력은 친박을 도려내어 진영 재편을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표적은 청와대(우병우 민정수석)로 확장된다. 이후 흐름은 우리가 잘 알듯, 국정농단과 측근 비리가 연이어 폭로되었고 분노한 수많은 시민은 광장으로 향했다.
보수언론만큼이나 여야 정치권 모두 이 국면을 관리하고자 했다. 당시 문재인은 ‘명예로운 퇴진’을 주장했고, 우상호는 원내대표로서 ‘질서 있는 퇴진’(권한이양과 거국내각 후 대선)을 내놓는다. 11월12일 광장에 처음으로 100만명의 시민들이 모인다. 다음날 비박계 의원들은 비상시국회를 열고 “헌법적 틀 내에서 질서 있는 사태 수습의 길을 찾아야 한다”며 사태를 받아들인다.
모든 경로를 시민들이 만들어낸 듯 보이지만 정국은 여러 이해의 경합장이었다. 당시 가장 유력하게 언급된 대안은 ‘질서 있는 퇴진’이었다. ‘탄핵’은 절차적으로 까다롭기에 차선이었고, ‘즉각 하야’는 꺼려졌다. 마지막 선택지였던 대통령의 ‘현상 유지’는 100만명 넘는 촛불광장을 염두에 두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런 가운데 정당들은 관리에 용이했던 탄핵으로 선회했고, 해를 넘기며 광장의 분노나 열망은 대통령을 다시 뽑는 일로 축소대체되었다. 시민이 만들어낸 주권자의 시간이 정치권이 점유한 순간이 됐다.
광장의 시간은 다시 투표장의 시간이 되었고, 광장의 해방감은 안전한 대의제 내로 들어왔다. 인민의 의지는 헌법재판소의 손안에 놓였다. 가장 능동적이고 자율적이던 힘이 가장 수동적이고 타율적으로 전환된 것이다. 모든 문제와 관심이 탄핵 여부, 즉 박근혜·최순실의 위헌적 행위로 모였다. 삶과 일터를 짓누르던 체제 문제는 개인 문제로 협애해졌다.
탄핵은 광장에 100만명이 모였던 때로부터 4개월 뒤 인용된다. 직후 모든 정치는 대통령 선거운동이 되었다. 2016년 가을부터 시작된 주권자의 시간은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의 모습으로 종료된 것이다.
불평등과 빈익빈 부익부, 재벌체제, 삶의 존엄과 죽음의 문제들은 ‘개혁과제’로 포장되어 체제 수호자들의 몫으로 넘겨졌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2016년의 교훈은 명확하다. 오늘날 우리가 광장에서 소환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대통령 부부를 아득히 넘어선다는 것.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를 반복한다면 그것이 가장 큰 비극일 것이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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