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경제수다방]10조5천억짜리 수의계약?
우리는 지금 출생아 수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으로 장기간 계속 줄어드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가 결국 맞게 된 21세기 위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보편적인 위기가 되었다. 중국, 북한도 최근 저출생으로 난리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도 그래”, 그렇게 그냥 넘어가기에는 한국의 상황이 워낙 심각하다.
출생아 수가 줄면 균형을 찾기 위해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한 투자가 늘고, 복지도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켜본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출생아 수가 줄면, 약한 고리부터 위기가 온다. 지방 소멸 현상이 생겨난다. 그럴수록 지방 경제 회생이라는 목표로 더욱더 인프라와 토건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 특히 지방 토호들이 지역 정치의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중남미와 일본 등에서 이런 경향성이 강하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생과 고령화의 길을 간 일본의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이 딱 이렇게 갔다.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잃어버린 30년’이 되었다. 그런 일본은 자민당 1당 체계이고, 그래도 두 개 거대 정당이 서로 견제하는 한국은 다르다고 할지도 모른다.
토건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까? 연말마다 반복되는 쪽지 예산에서 대선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아지는 총선의 개발 공약들, 여기에 여야의 차이가 어디 있는가? 대규모 국책사업 앞에서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차이는 잠시 정지한다.
‘가덕도 신공항’ 이익 서울로 갈 것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여러모로 일본의 간사이 공항 사례와 유사하다. 도쿄에 모든 게 집중되니까 오사카에도 새 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인공섬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같다. 어떤 면에서는 육지와 해상에 걸쳐 공항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가덕도의 난도가 더 높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그래도 간사이 공항은 내부적 논리대로 진행되었는데, 가덕도 공항은 외부적인 부산 엑스포에 개항 시기를 억지로 맞췄다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엑스포 유치는 실패했지만, 만들기로 한 공항은 그냥 진행되는 중이다.
간사이 공항은 공항 용지와 다리, 공항 관련 시설 등을 합쳐서 15조원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대규모 투자에도 지역 내 파급 효과는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간 지역 인구는 오히려 줄었고, 지역 내 총생산은 물론 지역 주민소득 역시 낮아졌다. 공항 건설 이후에도 간사이 지역의 지역 총생산이나 주민 소득 증가율은 일본 전국 평균을 밑돈다. 오히려 도쿄 건설사들의 수익으로 도쿄만 이익을 보았다는 지적이 있다. 양준호 교수팀이 수행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지역경제 효과 및 영향에 관한 연구’는 이런 사례들을 기준으로 엄밀히 검토한 후, 정부가 제시한 경제 효과, 특히 지역경제 파급 효과가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지적한다.
그것도 그렇다 치자. 부산 가덕도는 환경영향평가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기반공사를 하기 위한 입찰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공항 사업의 80%인 10조5000억원의 부지 조성 공사는 이미 4차례나 유찰되었다. 기술적 난도와 위험 부담 등으로 건설사도 쉽게 감당하기에 어려운 사업이 되었다.
정부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이미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낯 뜨거운 편법 정도는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공개 입찰을 포기하고, 10조5000억원짜리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하겠다는 건 좀 심하다. 결국 대형 건설사끼리 담합을 권장해서, 그들의 요구대로 사업비도, 공사기간도 늘려주게 될 것이다. 결국 더 많은 이득이 서울로 갈 것이다. 지역 인구와 소득이 줄어들고 도쿄의 이익만 높아진 간사이 공항과 닮아갈 여지가 높아졌다. 그래도 하기로 한 것이니까 그냥 강행하는 게 과연 좋은 것인가? 기후변화 대응으로 공항을 줄이는 게 선진국 추세인데, 1990년대 일본의 실패를 기후위기와 인구위기 속에서 우리가 반복하는 게 과연 맞는가?
시멘트가 아닌 사람에 투자해야
여야는 입장이 다른 게 없고, 국토교통부는 특별법 취지대로 편법 수의계약을 강행하는 이 상황, 과연 우리는 무슨 해법을 찾을 것인가. 행정적으로는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재검토할 시간이 있기는 하다. 조금 더 종합적인 시각에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살펴볼 수 있는 국무총리가 기술적 대안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다시 한 번 검토할 수 있다. 편법 수의계약을 하고, 혹시라도 대형 건설사에 밀려서 이면계약 같은 것을 몰래 하면 결국 담당자가 감사원은 물론 사법당국에도 불려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공사비를 아예 부산 지역의 미래세대 기금으로 쓰는 사회적 합의는 불가능할까. “시멘트가 아니라 사람에게”, 이런 시각으로 총리가 이 사업을 다시 한 번 여유를 갖고 검토해보기를 희망한다. 더 좋은 대안이 제시되면, 새로운 정치적 합의가 생겨날 수도 있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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