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두뇌’ BMS, 진짜 ‘주인’ 누구일까?

권재현 기자 2024. 9. 2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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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완성차 업체 ‘소유권’ 둘러싸고 치열한 물밑 신경전
BMS 작동 이미지. 현대차 제공
관련 기술 편차 크고 아직 불안정
제조사 “배터리 제조의 파생기술”
완성차 업체 “장착되면 우리 것”
현대차그룹, 자체 생산 여정 돌입
LG엔솔 “특허 최다 보유” 강조
화재 예방·수요 확대 ‘공통 숙제’
전문가들 “기술 고도화” 한목소리

지난달 터진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사건을 계기로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에 관한 관심이 급증했다. 가공할 만한 ‘열 폭주’ 현상의 심각성이 드러나면서 화재 진압 못지않게 예방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25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와 소비자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전기차 화재 예방과 수요 확대 전략’ 토론회에서도 한국자동차연구원 김태훈 책임연구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배터리관리시스템(BMS) 기술 고도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제대로 작동하면 불상사 방지 ‘안전판’

‘배터리의 두뇌’라고 불리는 BMS는 복잡한 기술이 총망라된 배터리의 품질 이상 여부를 사전에 감지해 제조사는 물론, 소비자에게 알려주고 필요하면 소방당국에도 통보해 혹시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화재 발생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고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즉각적인 대처가 가능해진다. 문제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잇달아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 사고가 증명하듯이 BMS 기술이 아직 만족할 만한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업체 간 기술 편차가 상당히 큰 편이다. 배터리 제조사의 수준을 뛰어넘는 BMS 관련 기술을 보유한 완성차 업체가 있는가 하면 배터리 제조사가 배터리팩에 붙여서 납품하는 BMS를 가감 없이 그대로 넘겨받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완성차 업체도 제법 많다고 한다.

이는 100년이 훌쩍 넘는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턱없이 짧은 전기차 발전의 역사와 무관치 않다. 대중화로 넘어가기 전 일시적 수요 둔화 단계인 캐즘 국면을 통과 중인 전기차 산업은 아직 핵심 플레이어인 배터리 제조사와 완성차 업계 간 ‘서열 정리’도 제대로 안 된 상태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완성차 제조사가 차량의 핵심 부품인 엔진 기술력을 기반으로 수만개의 부품사를 거느리며 가치사슬의 최정점에 서 있는 구조였다. 전기차 시대는 다르다. 가격 비중만 해도 40%가 넘고, 전기차의 성능과 안전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한 완성차 업체가 몇 곳 안 된다. 비야디(BYD)와 테슬라 정도다. 나머지 업체들은 대부분 CATL 등 중국 업체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K배터리’, 파나소닉 등 일본 제조사들에 손을 벌려야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벤츠의 EQE 전기차도 과거 내연기관 차량 부품처럼 벤츠가 중국 파라시스의 배터리를 완벽히 장악했다면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으리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천하를 호령하던 완성차 업계로선 지금 배터리를 둘러싸고 형성된 역학 구도가 지극히 낯선 풍경인 동시에 자존심 상하는 일인 셈이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하며 배터리 자체 생산을 향한 여정에 돌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 | KAMA 제공

‘구역·적임자 논쟁’…결국 주도권 싸움

BMS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포비아(공포증) 대응 차원에서 지난달 15일 선제적으로 BMS 관련 기술을 공개했다. 최대 60시간까지 주차 및 충전, 주행 등 전기차 사용 전 과정에서 배터리 모듈 온도, 셀 간 전압 편차, 전류 흐름을 막는 저항, 열화 상태(열에 의한 변질 정도), 순간·미세 단락(합선), 전류 및 전압 변화, 온도, 과전압 및 저전압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류경진 영남이공대 스마트e-자동차과 교수는 “현대차의 BMS 관련 기술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른 듯하다”고 평가했다. 나용운 국립소방연구원 박사도 “현재 상태를 진단하는 단계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단계로까지 진화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배터리 제조사들의 시선으로 보면 엄연한 ‘구역 침범’이다. 조선 중기 명재상 오성 이항복이 어렸을 때 이웃집 하인들이 담장을 넘어 자란 감나무의 열매를 따가자 그 집 대감 사랑방 창호지를 뚫고 주먹을 밀어 넣은 다음 “이 주먹은 누구의 것입니까?”라고 물어 소유권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일화처럼 이들은 BMS 역시 명백히 배터리 제조 노하우에 뿌리를 둔 파생 기술이므로 소유권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본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기아에 대한 맞불 차원에서 BMS 관련 특허 최다(8000건 이상) 보유 사실을 알리며 배터리 안전에 관해서는 자신들이 글로벌 최고 전문 업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 완성차 업체 9곳의 전기차에 자사의 BMS를 적용하고 있다”며 “배터리 안전진단 소프트웨어 사업 확대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소비자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배터리 제조사와 완성차 업계 모두 “BMS 기술 고도화의 적임자는 바로 우리”라고 말하고 있어서다. 아직 갈 길이 먼 배터리 안전성 확보를 위해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양측이 삐걱거리며 이처럼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는 자명하다. 납품 협상 과정에서의 주도권 확보 때문이다.

보급형 전기차 양산 비율을 늘려야 하는 완성차 업계로선 배터리 가격을 어떻게 해서든 내려야 한다. 배터리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 맞춤형 배터리를 공급받기 위해서도 배터리 자체 생산 기술 보유 여부는 매우 중요하다. 뭔가 알고 하는 얘기와 모르고 하는 얘기는 하늘과 땅 차이인 까닭이다.

반대로 어떻게 해서든 제값을 받아내야 하는 배터리 제조사들은 비교 우위의 기술 경쟁력을 계속해서 보유하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배터리 데이터 정보나 관련 기술 공개에 소극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당장 배터리 기술이 급하거나 전동화 전환이 늦은 완성차 업계는 배터리 제조사들과 합작 공장을 세우거나 전기차 공동 개발 프로젝트 형태로 제휴하는 방안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때론 배터리 제조사에 휘둘린다.

두 개의 태양은 없다…당분간 힘겨루기

하늘에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듯이 전기차 생태계 또한 언젠가는 한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배터리 제조사와 내연기관 차량 시절 전성기를 재현하려는 완성차 업계 사이에 치열한 힘겨루기가 계속될 공산이 크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가 차에 장착되는 순간 더는 제조사 소유가 아니다”라며 “BMS 또한 차주의 운행습관을 포함한 실주행 데이터 확보가 용이하고 클라우드 서버, 통신장비, 충전시설, 소방당국 등 관계기관과도 손발을 맞춰 배터리가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조율할 수 있는 완성차 업체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권재현 기자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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