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법치행정 : 행정에서의 적법절차의 원칙

송영신 법무법인 로하나 변호사 2024. 9. 2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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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신 법무법인 로하나 변호사

전화 한통을 받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해양경찰청 아무개 경감이라고 소속을 밝혔다. “유엔안보리 결의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알고 업무를 처리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있다고 해서요. 그런데, 판결문을 찾을 수 없어서, 사건을 담당하셨다고 들어서 이렇게 여쭤봅니다.”

5년 전쯤 파나마 국적 선박이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대한민국 항만에 입항이 금지된 사건이 있었는데, 필자는 당시 해당 선박의 선사(원고)를 대리해 ‘항만출입불허처분취소소송’을 수행했었다.

사실관계는 이렇다. 한국의 ○○○상사의 대표 등이 북한산 석탄의 원산지를 베트남산으로 위조한 원산지증명서로 원고를 속여 그 소유 선박을 통해 수입하였다가 발각되었다. 그런데 ○○지방해양수산청장(피고)은 위 선박을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위반 혐의를 이유로 국내 무역항 출입허가 대상 선박으로 지정하고 선박대리점으로 하여금 위 선박의 대리업무를 못하게 했다. 원고는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면서 발을 동동거렸다.

필자는 피고와 해양수산부에 ① 입항금지조치의 법적 근거 ② 유엔안보리 결의 번호 ③ 위조된 원산지증명서에 속아 선박이 이용된 것도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하는지 등을 질의했으나 피고는 해양수산부에, 해양수산부는 외교부에 문의하라고 하면서 답변을 피했다. 원고는 ○○항 출입허가신청을 했고, 피고는 2019년 12월 27일경 불허처분을 내렸다. 필자는 2020년 2월경부터 피고의 처분이 위법하므로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약 2년 넘게 진행해 대법원까지 갔고, 결국 피고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판결의 핵심은 ‘절차 위법’ 및 ‘재량권불행사의 위법’이었다. 즉, 행정청은 처분 시 당사자에게 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행정절차법 제23조 제1항). 당사자가 어떤 근거와 이유로 처분이 이루어졌는지 충분히 알 수 있어서 그에 불복하는 구제절차로 나아가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① 피고는 위 선박에 관한 어떤 행위가 어떤 유엔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는 것인지 및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과 선박입출항법의 관련성은 무엇인지 등도 전혀 밝히지 않았고, ② 원고의 질의에 대한 피고와 해양수산부(피고보조참가인)의 답변 역시 아무런 정보를 제시하지 않아, 마땅히 해야 할 필요최소한의 설명의무도 적극적으로 회피했는바, 피고의 처분은 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하자가 있어 절차적으로 위법하다.

다음으로, 피고는 ① 위 선박이 제3자의 범죄행위에 의해 북한산 석탄 운송에 이용된 사실만으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국내 입항금지 사유에 해당하는지, ② 유엔안보리 결의는 직접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국내 법령 등의 제정을 통해 이행되는 것인데,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사실을 곧바로 선박입출항법 제4조 제3항 등의 국가안전보장에 필요한 경우로 볼 것인지 등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함에도, 해양수산부장관의 지시에 따라 처분을 했을 뿐이라면서 스스로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았는바, 재량권 불행사 그 자체로서 재량권 일탈·남용의 위법이 있다.

필자는 위 판결의 의의를 3가지로 정리하고 싶다. 첫째, 법치행정(행정에서의 적법절차의 원칙)의 실현이다. 행정처분에 있어 당사자의 방어권 보장은 헌법과 행정절차법이 엄격히 보장하고 있고, 이는 유엔안보리 결의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둘째, 유엔안보리 결의의 국내법적 효력 발생 요건에 대한 최초의 사법 판단이다. 필자는 유엔안보리 결의가 국내법상 직접 적용의 구속력이 없고 국내 법령의 제·개정을 통해 가능하다고 강력히 주장했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셋째,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재량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상급관청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면서 책임을 떠넘기려는 안이한 행정청의 재량권 불행사에 경종을 울렸다.


그런데, 필자는 왜 오늘과 같은 전화를 받은 것일까? 시간이 꽤 흘렀는데 말이다. 아직도 유엔안보리 결의가 국내법으로서 직접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등이 제정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일선에선 여전히 혼란스러운 듯하다. 그렇다면, 누가 해야 할까? 언제쯤?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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