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의정 갈등 ‘조건 없는’ 만남이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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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필자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길에 수많은 전투 경찰, 사복 경찰이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임의로 가방을 뒤졌다.
급한 일이 있거나, 약속 시간에 늦어 뛰어가는데 잡히게 되면 정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데 티를 냈다가 구타당한 적도 있고, 심하면 뒷골목이나 경찰 버스로 끌려 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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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필자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길에 수많은 전투 경찰, 사복 경찰이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임의로 가방을 뒤졌다. 급한 일이 있거나, 약속 시간에 늦어 뛰어가는데 잡히게 되면 정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는데 티를 냈다가 구타당한 적도 있고, 심하면 뒷골목이나 경찰 버스로 끌려 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당시 대학교에서 흔하게 배포되던 민주화 소식지나 정권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는 신문이라도 가방에서 나오면 아무 이유 없이 연행되기도 했다. 85학번이었던 필자는 그래도 학교 내에서는 경찰을 보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는 학교 안에서도 경찰이 버젓이 감시와 수색을 했다.
군부 독재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질식할 지경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어쩔 수 없다는 패배감도 있었지만 따라가야 하는 외래 수업이 너무 힘들었다. 다른 생각을 할 엄두가 잘 나지 않았다. 고3 시간표 보다 훨씬 빡빡했고 한 과목이라도 F를 받으면 일년을 유급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수업만 따라가기에도 미쳐버릴 지경이었는데 그럼에도 민주화 운동에 나서는 친구도 많았다.
80년대 중반에는 정말 민주화 시위가 많았고 특히 1986년, 87년에는 6월 민주화 운동과 학내 민주화 라는 이슈로 의대생도 모두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대에 합류했다. 결국에는 나중에 보충하느라 한번도 제대로 된 방학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당시 수업 거부는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달을 넘기지는 않았던 것 같고, 학생들도 방학으로 보충이 가능한 시간을 초과하지는 않으려고 수업 거부를 조절했다.
지금 의대생들이 학교를 떠난지가 벌써 5달이 넘어간다. 중간에 여름방학이 있다고 해도 의대는 원래 여름방학도 짧다. 시험기간을 제외하면 두 달이 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겨울방학을 없앤다고 해도 정상적인 보충이 불가능한 시간이 되어간다. 일단 진급시키고 못들은 수업은 학년 올라가서 재수강하면 된다는, 이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교육부 장관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의대 교육이나 교육과정을 하나도 모르고 있거나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말 뜻을 모르는 것이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지도 정말 오래 되었다. 올해 돌아오기는 힘들 것 같고, 온다고 해도 정상적인 수련은 불가능 하다. 단순히 올해 전공의가 없고, 몇년후에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는다는 숫자적인 문제가 아니라 힘들게 유지되던 필수과의 숨통을 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0명과 2000명, 어느 쪽 숫자가 맞고 틀리느냐는 나중 문제이다. 일단 만나서 해결을 해야 할 시기다. 시간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그 중간 어디가 될지라도 조건없는 만남에 숫자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년 신입생과 현재 유급 위기에 있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 일것이다. 증원된 신입생에 한 학년이 거의 전부 유급생이 되어 같이 모이면 과중한 진료와 업무에 시달리는 의대 교수들이 사직하기 시작하고, 의대 교육자체가 붕괴될 지 모른다는 불안도 생긴다. 정부와 의료계, 정치권은 정말 ‘조건 없이’ 빨리 만나서 지금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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