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당선된다 하더라도 [오동재의 파도를 넘어]

한겨레 2024. 9. 2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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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으로 더웠던 한국의 추석을 뒤로하고 미국 뉴욕으로 날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을 때 미국의 기후 정책이 후퇴해서 기후변화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게 걱정의 큰 이유였다.

트럼프 당선 시 기후 문제가 끝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좋은 사례가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환경청의 수장으로 전 석탄업계 로비스트를 앉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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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1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오동재 | 기후솔루션 연구원

역대급으로 더웠던 한국의 추석을 뒤로하고 미국 뉴욕으로 날아왔다. 유엔 총회 개막과 함께 시작된 기후 주간에 참여했다.

뉴욕 거리와 회의들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들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미국의 대선이 6주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을 때 미국의 기후 정책이 후퇴해서 기후변화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게 걱정의 큰 이유였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정책에 큰 영향을 주는 패권국이기도 할뿐더러, 그새 세계 최대 석유·가스 생산국이 되어버렸기에 이해가 갔다.

그럼 정말 트럼프가 당선되면, 기후 대응은 끝일까? 반대로 카멀라 해리스가 당선된다면 아직 희망이 있을까? 짧으면 앞으로 6주, 길면 4년간 ‘기후 문제’를 걱정해봤던 사람들이라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질문이겠다.

트럼프 당선 시 기후 문제가 끝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좋은 사례가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였던 2017년부터 2020년 당시의 얘기다. 파리협정을 탈퇴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보다도, 미국의 석탄 산업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다시 돌려놓겠다는 약속이 대서특필됐다.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환경청의 수장으로 전 석탄업계 로비스트를 앉히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1기 행정부의 결과는 말과는 달랐다. 석탄 산업 노동자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오지 못했다. 오히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석탄 발전과 광산의 일자리를 떠났다. 75개의 석탄발전소가 문을 닫았다. 파리협정 채택을 이끌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 2기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끝날 때, 석탄 산업의 일자리는 2017년 대비 24%가 줄었다.

전 세계적으로는 어땠을까? 전 세계 신규 석탄발전소 투자는 같은 기간 내 80% 감소했다. 마지막 남은 ‘석탄 금융’ 지원국이었던 한국, 중국, 일본의 석탄 투자도 2020년 사실상 끝이 났다. 영국을 기점으로 빠르게 확산했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은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한국, 중국(2060년 탄소중립 달성), 일본이 동참하며 급속도로 확산했다.

그렇게 트럼프 행정부 1기는 석탄 산업의 일몰과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선에서 석탄 산업을 돌려놓겠다는 얘기는 자주 나오지 않는다. ‘석유·가스 최강국’이 그 자리를 대체했지만 말이다.

미국 대통령 당선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되겠지만, 그 영향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된다. 이미 변한 역사의 경로는 쉽사리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 물줄기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을 통해 미국 내 여러 주의 재생에너지 산업·인프라로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유럽에서의 ‘탄소중립산업법’으로 자리 잡았다. 석탄·액화천연가스(LNG)의 최대 수출국 중 하나인 호주(오스트레일리아)는 신규 광산·가스전의 온실가스 배출이 탄소중립이 되도록 강제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물줄기를 바꾸는 힘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나온다. 올해 뉴욕 기후 주간 수천명에 달하는 청소년 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 만들어낸 힘이다. 4년 전 아시아 최초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승리한 한국 청소년들이 만들어냈던 힘이다. 호주 정부가 그 많은 석탄·가스 자원을 뒤로하고 ‘재생에너지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선언을 만들어낸 힘이다. 새로 출범한 영국 정부가 전 세계의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위해 ‘재생에너지 연맹’을 새로 시작하도록 만든 힘이다. 미국 텍사스에서 다수의 엘엔지 수출 사업에 제동을 걸고, 결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신규 엘엔지 수출 인허가 잠정 중단 결정을 이끌어낸 지역 공동체의 힘이다.

이제까지 물줄기를 바꿔왔던 힘이 사그라들지 않는 한, 역사는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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