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밸류업지수 부양 우려한다 [세상읽기]

한겨레 2024. 9. 2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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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9월12일 서울 여의도 에프케이아이(FKI)타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한국거래소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준비해온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지난 24일 공개했다. 종목 선정 방식이 가장 큰 관심사였는데, 시가총액 400대 상장기업 중 적자 기업과 주주 미환원 기업을 제외한 다음, 주가순자산비율이 높은 회사들을 추리고, 최종적으로 자기자본이익률이 높은 100개 회사를 지수에 편입시켰다.

주가순자산비율과 자기자본이익률은 산업군 내 순위를 고려해 종목 선정에 사용했고, 기존 지수와의 차별화를 위해 개별 종목의 지수 내 비중을 15%로 제한한 점에서 신중하게 고민한 흔적이 부분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실제로 기업들의 가치 제고 노력을 유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첫째,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반쪽짜리 밸류업 지수다. 급성장하는 산업에 속한 기업들은 이익을 주주에게 환원하기보다는 모두 투자에 사용해야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이러한 기업들을 모두 제외한다. 최근 2년간 배당하지 않았거나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은 기업은 지수에 편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 혁신 등으로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때 이 산업에 진출한 기업들은 적자에도 불구하고 미래 성장성 덕분에 기업 가치를 높게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이러한 기업들 역시 배제하고 있다.

둘째,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사실상 밸류업 지수가 아니라 자기자본이익률 지수에 가깝다. 다양한 평가지표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종적으로 100개 종목을 선별할 때 사용하는 지표는 자기자본이익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자본이익률은 현재의 성과만 반영하고, 미래의 성과는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밸류업 노력을 유도하려면 밸류업 달성도를 정확히 측정해 지수 편입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자기자본이익률로는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현재와 미래의 성과를 모두 반영할 수 있는 주가순자산비율을 최종 선별 지표로 사용하는 것이 더 적합했을 것이다.

한편, 지난 9월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회에서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내 주식 위탁투자지침에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상장기업에 투자한다’는 내용을 명시했으며,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 실적을 바탕으로 위탁운용사를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밸류업 지수의 수익률을 인위적으로 높이거나, 지수에 포함된 종목의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동원될 수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다. 수익률이 높거나 주가가 오른다 해도, 그것이 회사들의 기업 가치 제고 노력 때문이 아니라 국민연금을 통한 주가 부양에 의한 것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나빠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같은 토론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국민연금의 자본시장 안전판 역할을 강조하면서 일본 공적연금이 자국 주식 투자 비중을 2010년 11.5%에서 2023년 24.7%로 확대해 일본 주식시장의 저평가를 해소하고, 일본 밸류업 정책에도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정부가 국민연금의 중장기 자산배분안에 개입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5월 중장기 자산배분안을 확정하면서,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2024년 15.4%에서 2029년까지 13%로 줄이기로 하여 일본 공적연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립금 대비 비중이 아닌 자국 거래소 시가총액 대비 비중을 살펴보면 국민연금이 자국 주식시장에 더 많이 투자한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시가총액 대비 국민연금의 자국 주식 투자 비중은 7%로, 일본 공적연금의 6.4%보다 높기 때문이다. 물론 중장기 자산배분안을 이행한 5년 뒤에는 시가총액 대비 비중도 일본보다 낮아질 수 있다. 하지만 국부의 국내외 분산 필요와 2041년 이후 닥칠 적립금 급감에 대비해서라도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다.

밸류업 지수의 존재 의의는 높은 수익률을 실현하는 데 있지 않고, 기업 가치 제고 노력을 유도하는 데 있다. 자기자본이익률이 높은 대형 상장회사가 최소한의 배당만 지급하고 중간 정도의 주가순자산비율만 유지해도 들어갈 수 있는 밸류업 지수를 만든 것도 문제인데 여기에 더해 국민연금을 동원해서 지수를 인위적으로 부양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날은 더 멀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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