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해도 괜찮아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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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리학이나 상담 분야에서는 긍정심리학이 대세라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긍정심리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인간의 긍정적 감정과 긍정적인 개인의 특성, 그리고 긍정적인 제도이다.
이러한 평가에 따라 긍정심리학은 개인과 사회의 번영을 꽃이 활짝 핀 상태에 비유하여 플로리시(flourish·번영)를 목표로 한다.
이러한 긍정심리학의 원리는 학교 공동체의 맥락에도 적용되어 '긍정교육'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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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命人) |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요즘 심리학이나 상담 분야에서는 긍정심리학이 대세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병들어 있고, 왜 아픈가를 파고들어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하고 고통을 덜어주는 데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긍정심리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인간의 긍정적 감정과 긍정적인 개인의 특성, 그리고 긍정적인 제도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삶에서 부정적인 측면을 없애려고 노력하기보다 긍정적인 측면을 계발하려고 노력해야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단 얘기다.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들은 몇가지 변수로 내 정신 건강과 행복을 과학적으로 측정하여 평가한다. 이 지표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첫째, 개인이 뚜렷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알고 ‘자기 주도적’으로 살고 있는가, 둘째, 얼마나 ‘긍정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가, 셋째, 사회관계와 사회 활동 등에서 일관성 있게 ‘수용적이고 통합적’인가, 넷째, 신체적으로 얼마나 건강한가. 이러한 평가에 따라 긍정심리학은 개인과 사회의 번영을 꽃이 활짝 핀 상태에 비유하여 플로리시(flourish·번영)를 목표로 한다. 즉, 각 개인이 지닌 강점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적의 감정 상태로 자신의 기능과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심리학의 원리는 학교 공동체의 맥락에도 적용되어 ‘긍정교육’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한국의 경우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드러난 학생들의 학습 부진, 학습 동기 감소, 학생 간 학업 격차 등의 심각한 교육 문제로 인해 학생들의 정신 건강이 위태롭다는 인식에서 긍정교육이 대두하였다. 다시 말해 외로움, 우울증, 불안 등으로 고통받는 학생들이 늘어났고,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까지 생겨나며 긍정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된 것이다. 학교 교육이 학생 개인의 강점, 웰빙, 회복력 등에 주목하는 것은 경쟁 위주의 교육에서 개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교육으로 전환하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행복을 목표로 교육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행복 추구는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권리인데 말이다.
그런데 왜 나는 점점 더 삐딱해질까? 자신의 강점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 이 사회에서 정말로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나? 개인의 강점과 자원, 그리고 그것이 발휘될 조건은 모두에게 똑같은가? 게다가 각자의 행복을 심리학자들이 정한 몇가지 척도들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서 더 눈여겨볼 것은, 긍정교육에서 제시하는 학교 교육의 방향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하는 ‘학습 나침반 2030’에서 내건 미래 교육의 목표와 거의 일치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불확실성과 복잡성이 점점 심해지는 미래사회를 위해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방향을 찾고 자신과 사회의 ‘웰빙’을 위해 ‘스스로’ 실천하는 ‘의지와 역량’을 갖추게 하는 교육. 이러한 나침반에 따라 거의 전 세계 교육계가 교육과정을 재편했고, 한국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전 세계 교육의 방향을 대체 왜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도 아니고 세계 경제 기구에서 정하나? 기후도, 일자리도, 교육도, 과학기술로 인한 미래도 이 세계를 불확실하고 불안하게 만든 것은, 이윤을 위한 경제성장만 추구하면서 세계 경제를 지배해 온 바로 당신들 때문이 아닌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는 이렇게 우리의 자아를 관리하여 급변하는 사회의 위험과 위기에 우리 스스로 대비하라고 명령한다. 우리가 초래하지 않은 위험과 불안과 공포에 대한 책임을 왜 우리의 마음이 져야 하는가? 기후 위기와 극심한 불평등의 시대,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은 그것을 초래한 이 사회구조를 삐딱하게 봐야만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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