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폭풍도 견뎌낼 '노아의 방주' 같은 튼튼한 재정 만들자
제언(5) 튼튼한 재정, 금융이 강한 국가
나랏빚 5년새 446조 늘어 1126兆
GDP대비 채무비율 50% 넘어 '경고음'
부채관리 실패 땐 남미처럼 재정 거덜
건전 재정 허물려는 세력, 표로 심판
방벽 쌓아 언제 덮칠지 모를 파도 대비
금융 경쟁력 10여년째 제자리걸음
정부, 규제·관치 걷어내 혁신 길 터주고
은행, 도전 주저 말고 킬러 콘텐츠로 승부
증권사, 역량 키워 '한국판 골드만' 육성
K머니 '생산·소득 더블링' 파수꾼으로
성경에 나오는 얘기지만 세상을 절멸시킨 대홍수에서 노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계시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에 인간의 지난한 노력이 더해졌다. 노아 가족은 수십 년에 걸쳐 약 135m 길이의 목선을 제작했다. 대재앙에서 생존했고, 노아의 후손은 인류를 이뤘다.
빠르게 증가하는 한국 국가채무를 보면 창세기에 묘사된 대홍수가 떠오른다. 우리는 방주를 준비하고 있는가. 각 영역에서 선진국 기준을 아무리 충족한들 나라 곳간이 부실해져 빈사 상태에 이르면 초일류 국가로의 도약은 불가능해진다. 허약한 재정으로는 위기 때 속절없이 휩쓸려 간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를 더한 국가채무는 그 증가 속도가 특히 위협적이다. 국가채무는 2018년 680조원에서 2023년 1126조원으로 5년 새 446조원 급증했다. 이 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역시 35.9%에서 50.4%로 늘었다.
‘큰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각종 퍼주기 정책으로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한 후과는 혹독하다. 바통을 이어받은 윤석열 정부엔 긴축 예산 편성 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도 재정수지 적자는 해마다 불어난다. 긴축을 이어가도 2026년엔 국가채무가 1346조원까지 치솟는다는 게 정부 추계다.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경고음은 곳곳에서 들려온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최근 재정이 한국 신용등급 평가에서 더 이상 가점으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나랏빚이 적정 수준을 넘으면 국가신용도 하락과 자본 이탈을 부른다. 과도하면 국가 부도 상태로 추락한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호시탐탐 곳간을 거덜 낼 정책 몰이를 멈추지 않는다. 국민 1인당 25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법안을 이달 초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더불어민주당의 포퓰리즘은 집요하기만 하다. 소요 예산만 13조원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 관련 법안 도입은 부지하세월이다.
국가 미래를 걱정하는 의원들이 나서 국회 안에 민간 전문가를 포함하는 반포퓰리즘특별위원회라도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정치권 변화가 기대 난망이라고 해서 그냥 있을 수는 없다. 당장의 달콤한 포퓰리즘이 미래세대 고통을 가중할 것이란 국민적 각성이 필요하다. 재정 건전성을 허물려는 세력을 표로 심판할 것이라는 경고도 끊임없이 보내야 한다.
방만 재정이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웃 나라 일본은 좋은 반면교사다. 구조개혁은 외면한 채 금융 완화와 재정 지출 확대에 매달린 ‘아베노믹스 10년’의 결과 일본의 GDP 대비 일반 정부부채(국가채무+비영리 공공기관 부채) 비율은 254.5%로 뛰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국채 잔액은 지난 30년간 다섯 배 증가해 1000조엔을 넘어섰다. 내년 일본 정부 예산 약 117조엔(약 1092조원) 중 국채이자 비용만 10조9300억엔(약 102조원)에 이른다. 급격히 불어난 국가채무에 고령화에 따른 복지비 폭증까지 겹쳐 경기 대응을 위한 어떤 재정 정책도 펼칠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재정은 성장을 위한 보조 수단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장의 원동력은 기업 투자 확대와 생산성 제고에서 나온다. 민간의 활력을 높일 규제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근시안적 사고에서도 벗어나자. 거대한 파도가 언제 우리를 덮쳐올지 모른다. 북한 변수도 그중 하나다. 건전 재정의 방벽을 튼튼히 쌓는 노력은 훗날 천문학적 통일 비용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때의 재정 건전성에 따라 통일은 기회가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재정은 어떤 위기도 견뎌낼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한다. 류시훈 유통산업부장
한국 금융은 늘 찬밥이었다. 툭 하면 노동과 함께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대표 분야로 꼽혔다. 십수 년 전엔 아프리카 우간다보다 경쟁력이 뒤처진다는 조롱까지 받았다.
얼마 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내놓은 ‘2024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확인된 한국의 금융 경쟁력 순위는 세계 29위. 작년 36위에서 7계단 상승했지만 주요 7개국(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의 국력을 감안하면 갈 길이 멀다.
한국 금융은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강한 금융’이 ‘강한 기업과 시장’을 만든다. 정부와 정치권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물망처럼 얽힌 규제부터 깨야 한다. 금융당국은 10년 묵은 금융권 ‘망 분리 규제’를 이제야 손보기 시작했다. 이게 다다. 60년 넘게 묵은 ‘금산 분리’와 ‘업무위탁(아웃소싱) 제도’ 등 셀 수 없이 많은 규제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림자 규제’인 관치(官治)도 청산해야 할 대상이다. 당국이 금융시장을 칸막이로 나누고 영업과 인사, 가격 정책에 집요하게 개입하는 관행이 화석처럼 굳었다. 올 들어선 정부가 시중은행 금리와 대출 수요까지 통제하려 달려든 양상이다. 시장을 뒤트는 ‘오만한 착각’에 불과하다. 금융시장을 왜곡하고 은행의 혁신을 짓누를 뿐이다.
규제와 관치 탓만 할 수는 없다. 금융회사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상품 베끼기와 역마진 출혈 경쟁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행 특화 상품인 트래블카드가 인기를 끌자 5대 시중은행이 우르르 몰려들어 ‘붕어빵 카드’를 앞다퉈 내놓는 게 한국 금융의 현실이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장부가보다 낮은 0.5~0.6배 수준에 머무는 이유다.
금융지주와 은행은 이제라도 사력을 다해 ‘킬러 콘텐츠’를 키워야 한다. 가계대출을 내주고 이자를 따먹는 소매금융의 틀 안에 갇히면 미래는 없다. 특화된 기업금융 역량을 확 키워야 한다. 이게 진정한 은행 대형화, ‘특화 은행’으로 가는 길이다. 국내에 들어온 미국 은행을 보면 얼추 답이 보인다. 한국에선 맥쿼리가 인프라, HSBC와 씨티가 무역금융 부문을 싹쓸이하고 있다. K은행도 이래야 한다. 은행별로 독보적이고 특화된 경쟁력을 갖추고, 덩치를 키워 글로벌 금융사와 맞붙어야 한다. 당장 깨지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
무한 자본 경쟁 시대를 이끌 ‘한국판 골드만삭스’도 육성해야 한다. 2017년 미래에셋 한국 NH KB 삼성 등 국내 5개 증권사가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지정됐지만, ‘우물 안 IB’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몸집(자기자본)도 작고, 글로벌 IB와 전투를 벌일 역량도 갖추지 못했다. 진정한 초대형 IB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선명하다. 지금보다 몸집을 더 키우고 기업금융, 신흥국에서 증권중개 역량을 대폭 높여야 한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손잡고 대형 딜을 주도하는 경험도 더 쌓아야 한다. 그래야 국부를 건 총성 없는 전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기업과 산업 혁신의 씨앗을 뿌리는 일도 금융과 자본시장의 몫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수십 년간 한국을 떠받친 대표 산업, 기업은 여전히 그대로다. 미래 산업군에서 제2의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을 키워낼 모험자본이 필요하다.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 규제부터 대폭 완화해야 한다. 기업들이 글로벌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초격차를 유지할 ‘비책(秘策)’이 될 것이다. 강한 금융은 한국의 ‘생산과 소득 더블링’을 이끄는 특공대가 될 것이다. 한국 금융 및 자본시장의 건투를 빈다.
장창민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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