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어느 10대 여성의 죽음
친구를 배웅하고 귀가하던 밤이었다. 전남 순천시에서 여성이 3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모르는 사람이에요. 저 좀 살려주세요.’ 이 여성은 이 말을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그러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최근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수능을 준비하던 여성이 그렇게 떠나고 말았다. 겨우 17세였다.
지난 26일 범행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엔 한 남성이 대로변을 걷는 여성을 빠른 걸음으로 따라잡더니 등 뒤에서 수차례 공격하는 모습이 담겼다. 거리에서 배회하다 체포된 남성은 혼자 소주 4병을 마신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여성이 공격당한 그 자리엔 국화꽃이 놓였다. 딸기우유, 과자 등도 쌓였다. 시민 요청으로 29일 순천시가 설치한 추모분향소에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 주변에는 ‘열일곱 살 빛나는 생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시민들의 현수막도 내걸렸다. 여성을 향한 무차별적 범행인 만큼 사회적 공분도 크다. 우리 사회가 낮이든 밤이든 왜 불안하게 살아야 하는지 묻게 된다.
이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공격한 이유는 캐보지 않아도 안다. 남성에게 그러다가는 자신이 당할 테니 약한 여성에게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여성들은 내가 표적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몸이 떨린다. 추모 물결이 크게 이는 것도 여성들의 공포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해시태그 ‘#살아남았다’가 널리 쓰였다. 여전히 우리는 여성이 하릴없이 죽어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 죽음을 멈출 역할을 수행해야 할 여성가족부를 정부가 대안도 없이 고사시킨 결과다. 그사이 ‘이상동기’ 폭력,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7개월째 공백인 여가부 장관 인선에 들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기로 하면서 여가부 문제가 대두되자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늦었지만, 여가부가 혐오와 차별을 없애는 성평등 정책을 펴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겠다. 정부는 젠더폭력의 두려움을 여성들이 계속 떠안고 있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 ‘성평등 사회를 만들 것’이란 메시지를 줘야 한다. 그것이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추모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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