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낯설지만 가까운 공공조달

2024. 9. 2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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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보 조달청 차장

매일 아침 'LED 바닥형 보행 신호등'이 설치된 교차로 건널목을 건너 출근한다. 청사 출입구에는 '얼굴 인식 출입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어 이제는 출입증을 챙길 필요가 없다. 사무실 복도에 들어서면 발화 장소에 던지기만 하면 되는 '투척용 소화기'가 모퉁이에 비치돼 있다. 잠시 방문한 시청에서는 '스마트 전기차 충전장치'에 차량을 주차해서 일을 보는 동안 충전을 한다. 시청 주위를 돌아보면 '투명 페트병 무인회수기'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눈에 띈다.

'공공조달'이라는 용어는 국민들에게 낯설다. 하지만 늘 공공조달을 마주하며 생활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제품들은 '공공이 첫 번째 구매자가 된다'는 취지로 혁신조달제도를 통해 조달청이 선정한 제품들이다. 또한 도로와 신호등, 가로등, 교통표지판은 물론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각종 청사 건물과 그 내부의 물품과 장비 등 국민을 위한 공공서비스에 제공되는 시설, 물품, 장비는 모두 공공조달과정을 거친다.

코로나19 시기에 공적 마스크를 공급해 국민 불안을 해소한 것도, 요소를 긴급 수입하고 비축 물량을 방출해 요소수 파동을 진정시킨 것도 공공조달의 역할이었다. 우리 군 장병들이 입고 먹는 피복과 식품도 2020년부터 조달청이 계약을 담당하면서부터 품질과 다양성 측면에서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다. 공공조달은 생각보다 훨씬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최근 공공조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집중구매, 예산절감 등 재정의 효율적 집행이 주로 강조되었다면 지금은 정책적 가치, 즉 역동 경제, 미래 대비, 위기 대응 등 핵심 국가정책을 추진하는 강력한 정책수단으로 그 전략적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연간 210조 원에 달하는 공공조달시장은 7만여 개의 공공기관과 57만여 개의 기업이 거래하는 시장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다양한 조달제도를 통해 여러 가지 정책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공공조달시장에 등록된 창업기업과 벤처기업만 해도 각각 2만여 개가 넘는다.

창업·벤처기업들을 위한 우선구매제도는 이들 기업에게 안정적인 공공판로를 제공함으로써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창업 이후 자금 조달과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존폐의 위기에 처한다는 소위 '죽음의 계곡'(Death Vally)이라 불리는 3~7년 사이 구간을 넘는 데 공공조달시장이 기회의 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혁신조달 외에도 우수조달물품 지정과 벤처나라 운영, 해외조달시장 수출 유망기업 지정, 녹색기술·우수재활용 제품, 장애인·사회적 기업 우대 등의 제도는 기술 혁신, 수출 확대, 탄소 중립과 기후변화 대응, 사회적 가치 실현 등 다양한 국가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국민 삶의 질 향상,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 제고, 지속가능 경제 실현 등을 위해서는 공공조달의 역할이 필수적인 것이다.

9월 30일은 '조달의 날'이다. '조달의 날'은 공공조달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2005년 우리나라 최초로 유엔 공공행정서비스상을 수상한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나라장터)의 개통일인 9월 30일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은 '조달의 날' 기념행사는 9월 25일과 26일 '기업의 벗, 혁신의 빛, 미래의 별'이란 주제로 혁신조달에 초점을 맞춰 개최했다. 조달청의 대표 정책이자 기술·기업 혁신과 공공서비스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혁신조달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박람회로 불리는 CES에서 2023~24년 2년 동안 26개 혁신조달기업이 CES 혁신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혁신조달의 효과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올해 '조달의 날' 행사도 퀀텀 점프를 준비하는 많은 혁신기업과 혁신제품, 공공조달의 현재와 미래를 확인하는 좋은 자리가 되었다.

'조달의 날'이 그 동안 국민들 가까이 있었지만 낯설었던 공공조달이 국민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공공조달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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