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칼럼] 위기 맞은 尹, 韓과 협력 외 대안 없다
임기 반환점을 눈앞에 둔 윤석열 대통령이 사면초가다. 국정 운영은 거대 야당에 막혀 휘청거리고 있다. 거야는 각종 특검 공세로 숨통을 조여온다. 승부수로 띄운 의료개혁은 의사단체의 집단 반발에 출구가 안 보인다. 김건희 여사의 각종 의혹에 민심은 싸늘하다. 급기야 정국 해법을 놓고 여당 대표와 갈등까지 빚고 있다. 지지율은 20% 초반(갤럽)까지 밀렸다.
위기의 상당부분은 윤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정권 초반부터 발목을 잡은 오만과 불통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이 화나도 좀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정치력 부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정권 위기를 부른 최악의 총선 참패는 그 결과물이었다. 윤 대통령의 무리한 이종섭 주 호주대사 임명 강행과 875원 대파 발언, 비대위원장 사퇴요구 파동 등 용산발 겹악재가 부른 참사였다.
불통 이미지는 시간이 갈수록 해소는커녕 더 고착화하고 있다. 과반의석을 가진 야당 대표의 회담 제의를 2년 넘게 외면했던 윤 대통령이다. 총선 참패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차례 만났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후 이 대표의 거듭된 회담 제의는 공허한 메아리다.
여당 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정국 해법 마련을 위한 독대를 신청했으나 윤 대통령은 거부했다.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 지난 24일 윤 대통령이 주재한 당정 만찬에선 의료 위기와 김 여사 의혹 등 현안은 거론조차 안됐다. 한 대표는 그 흔한 인사말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벌어진 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당정 회식', '떼밥'이라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예사롭지 않다. 국정 운영의 책임을 진 여권의 1인자와 2인자의 대립이라는 점에서다. 그것도 대내외 환경이 최악인 상황에서다. 거야의 입법폭주로 여당은 국회의 방관자로 전락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국정동력 유지를 위한 마지노선인 40%의 절반을 겨우 넘긴다. 개혁 추진의 동력은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태다. 의료 갈등 장기화는 국민 불안을 키우고 있다.
여기에 김 여사의 명품백 의혹에 이어 총선 공천개입 의혹까지 불거졌다. 총체적 난국이다. 두 사람이 손을 잡아도 모자랄판에 적전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외형적 갈등 원인은 세 가지다. 채상병 특검법과 김 여사 의혹, 의료위기에 대한 해법을 둘러싼 입장차다. 한 대표는 대법원장 추천을 골자로 한 채상병 특검법과 김 여사 의혹에 대한 국민 눈높이 해결,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을 위한 2025년 의대 증원의 의제 포함을 제시했다. 야당의 무리한 특검 공세를 차단하면서 국민 여론을 감안한 나름의 고육책이다.
윤 대통령은 불가 입장이 확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건 드러난 것일 뿐이다. 속내는 다르다. 윤 대통령으로선 한동훈의 부상이 마냥 달가울리 없다. 한 대표에 힘이 실리는 순간 자신의 레임덕이 가속화할 수 있다. 극도의 견제심리가 발동했음직하다. 총선 참패의 한 요인이다. 현안에 대한 불협화음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권력자의 본능이라지만 그렇더라도 최근의 대응은 과도하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검사 시절 후배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를 법무장관에 임명한 것도, 위기의 여당에 구원투수로 등판하게 한 것도 다름아닌 윤 대통령이었다. 그렇게 챙겨준 한 대표에 인간적으로 서운할 수 있다.
그럴수도 있지만 그건 감정의 문제다. 현실은 다르다. 한 대표는 공당의 대표다. 그것도 당원 63%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여당 대표다. 정치 파트너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한배를 탔다. 운명공동체다. 원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면 두 사람에게 기회가 있겠지만 거꾸로 대립하고 갈라서면 공멸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이를 모를리 없다. 임기 절반을 넘기면 내리막이다. 레임덕은 시간 문제다. 시간은 윤 대통령 편이 아니다.
당장 만나 터놓고 얘기해야 한다. 여권의 1인자와 2인자가 만나는 데 무슨 절차가 필요한가. 친윤도 '대표 흔들기'보다는 윤 대통령을 설득하는 게 옳다. 오해는 풀고 위기를 돌파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여권이 사는 길이다.
이재창 부국장 겸 정치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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