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병기’ 노력, 1952년부터…일본 그릇된 주장 접어야”

길윤형 기자 2024. 9. 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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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한일협정 문서 분석 유의상 전 외교부 국제표기명칭대사
유의상 광운대 겸임교수(전 외교부 국제표기명칭대사)가 26일 자신이 그동안 해온 한일협정 외교문서 분석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3만5천쪽에 이르는 한국 쪽 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훑어봤다고 말했다. 부산/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한국이 1990년대 초까지 ‘일본해 단독 표기’에 대해 이의제기를 한 적이 없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1차 한일회담 때인 1952년부터 ‘동해/일본해 병기’ 시도가 있었고, 마지막 7차 회담 때 나온 ‘한·일 간 어업문제에 관한 합의사항’(이하 ‘합의사항’)에는 병기가 실현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유엔(UN) 등 국제 무대에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에 자리한 동해 수역의 명칭을 ‘동해/일본해’로 병기하자는 운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32년에 이른다. 한국의 주장은 동해와 일본해에 담긴 역사성을 상호 존중해 이를 국제적으로 사용할 때는 두 지명을 병기하자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한국 등이 일본해 명칭에 이의를 주장한 것은 1992년부터”라며 “이전까지 한국이 이의를 제기한 적은 없었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옳은 주장일까. 외교부 국제표기명칭대사를 지낸 유의상(66) 광운대 겸임교수는 “한일회담 문서를 꼼꼼하게 분석해 보면 ‘일본해 표기’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문제제기가 이뤄진 것은 제1차 한일회담이 시작된 1952년”이라며 “1992년부터 갑자기 병기 요구가 이뤄졌다는 일본의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철회돼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공개된 한일협정 문서 분석
한국, 1차 회담서 명칭 연구 제의
7차 회담 합의문서엔 병기한 적도
“90년대 초까지 일본해 단독 표기에
이의제기 없었다는 일본 주장 잘못”

유 교수는 26일 부산에서 열린 동해연구회의 ‘제30회 동해지명과 바다 이름에 관한 국제 세미나’에서 발표한 논문 ‘한-일 어업협정 교섭에서 다루어진 동해 수역 지명 표기 문제’를 통해 한국의 첫 이의제기가 이뤄진 것은 1차 한일회담 어업위원회(1952년 2월~4월·총 15회 개최)였음을 입증해 냈다. 이를 보여주는 한국 쪽 외교문서를 보면, 임철호 한국 대표는 3월15일 8차 회의에서 동해 수역의 명칭에 관해 “귀국에서 일본해라는 바다를 한국에서는 동해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 바다의 명칭을 연구하자”고 제의한다. 일본 외교문서도 뉘앙스는 살짝 다르지만 한국의 문제제기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임 대표는 “본 어업위원회의 관련 사항은 아니지만 협의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서 “일본 쪽 제안에 있는 ‘동해’란 명칭은 한국어로는 ‘일본해’를 의미한다. 오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불편하다. 명칭을 통일할 필요가 없는가”라고 말했다. 시마 대표는 이 말이 ‘동지나해’(동중국해)(일본은 1차 협상에서 '동해 수역'이 아닌 ‘동중국해’를 ‘동해’라 표기했다)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해하고 “연구해 보자”고 답한다. 하지만, 곧 “임 대표가 말하는 것은 ‘일본해’(란 표현을)를 바꿨으면 한다”는 의미인 것을 깨닫는다. 일본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한국은 닷새 뒤인 9차 회의(3월20일)때부터 동해를 ‘동해(일본해)’로 병기하기 시작한다. 일본의 일본해 단독 표기를 거부하고 병기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이 문제는 협상의 주요 쟁점이 되진 못한다.

병기와 관련해 중요한 움직임이 이뤄진 것은 마지막 7차 회담 때였다. 한일협정의 최종 타결을 가로막는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어업협정에 대한 이견을 좁히기 위해 한·일은 1965년 3월24일부터 막바지 고위 실무회담을 시작한다. 일본은 1~3차 회의 때 제출한 문서에선 동해 수역을 ‘일본해’로 단독 표기한다. 하지만, 4월1일 오후 4시부터 이튿날인 2일 오전 6시까지 이뤄진 철야 교섭 이후 ‘중대한 변경’이 이뤄졌다. 양국 정부가 본국에 보고한 ‘합의사항’ 문안의 세 곳에 한국은 ‘동해(일본해)', 일본은 ‘日本海(東海)’라는 식으로 병기를 시도했다. 유 교수는 “이 철야 회담을 통해 병기를 하자는 한국의 집요한 요구를 일본이 수용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튿날인 3일 양국 협상 대표는 이 문서에 합의한다. 이후 한국은 국무회의 의결, 일본은 각의 결정을 통해 이 문서를 승인했다. 무려 13년 8개월 동안 진행된 한일협정이 최종 타결되는 ‘결정적 분수령’이 된 핵심 합의 문서에 ‘동해/일본해 병기’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최종문서인 어업협정의 ‘부속서’와 ‘합의의사록’엔 다시 동해(한국어본)·일본해(일본어본)라는 단독 표기로 후퇴하고 만다. 유 교수는 “일본의 반대로 끝내 병기안이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국 정부의 중요 합의문서에 병기가 이뤄졌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돌 맞아
일본과 직접 교섭으로 성과 내야”

1965년 4월3일 한·일 정부가 합의한 ‘한·일간 어업문제에 관한 합의사항’ 문서에 동해/일본해 병기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서는 한국에선 국무회의 의결, 일본에선 각의 결정을 받았다. 유의상 교수 제공

37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2018년 말 퇴임한 유 교수는 한일협정 문서 분석을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2003년 1월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한일협정 문서를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냅니다. 마침 그때 제가 외교부의 동북아1과장(일본 과장)이었습니다.” 외교부는 한-일 간의 민감한 협상 내용을 공개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담당 과장이던 유 교수는 이 소송의 정부 쪽 증인으로 나와 문서 공개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당시 법정에서 구두짝을 벗어 던지는 분들도 있었어요. 당신은 어느 나라 외교관이냐는 비난도 많았습니다. 힘들게 내린 결정인데 국민들 생각은 달랐던 거죠.”

이런 갈등 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1월 한일협정 외교문서를 전면 공개하는 결정을 내린다. “막상 문서가 공개되고 나니 이를 꼼꼼하게 보고 분석하는 이들이 많지 않더군요. 제가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3만5000쪽에 이르는 한국의 외교문서 전체를 한장한장 다 읽고 꼼꼼하게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써 2015년 광운대에서 박사학위(논문 이름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재평가’)를 받았다. 현재는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한일협상 외교문서를 분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작업이 이뤄진 예비회담~3차회담 이후 4차~7차 회담까지 문서를 분석해 무려 9권의 자료집을 펴냈다.

“동해 병기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한국의 병기 주장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이해가 높아지는 등 여러 성과가 있었습니다. 이제 성과를 내려면 일본과 직접 교섭해야 합니다. 나중에 정부가 일본과 협상을 시작하는데 제 작업이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마침 내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입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죠.”

일본 정부가 누리집에 공개하고 있는 자료 ‘일본해-국제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널리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명칭’을 보면, 한국이 1992년 이전까지는 일본해 명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잘못된 지적이다. 일본 외무성 제공
1차 한일회담 어업위원회(1952년 2월~4월·총 15회 개최) 8차 회의(3월15일) 결과를 설명하는 일본 정부의 문서를 보면, 임철호 한국 대표가 일본이 동해수역을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음을 알 수 있다. 밑줄 그은 부분은 “임 대표가 말하는 게 ’일본해’(라는 표현)를 바꿔줬음을 하는 의미임이 판명됐기 때문”에 “이 건에 대해선 한국의 희망으로 받아두겠다”고 답했다는 내용이다. 유의상 교수 제공

부산/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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