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탐구] 사모펀드, 천사인가 악마인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 큰 힘
장기투자 소홀 경쟁력 '뚝'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기업이며 국가 기간산업에 핵심 소재를 공급하는 고려아연이 MBK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며 사모펀드에 의한 인수합병(M&A)을 두고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대다수 여론은 MBK의 고려아연 인수에 부정적이다. MBK에 우호적인 의견은 희소하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MBK의 공개매수가 국내 상장사 주주의 권리를 재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논평 정도가 눈에 띈다.
반면 MBK의 고려아연 인수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크고 우렁차다. 단기매매 차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는 장기투자를 소홀히 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 대표적 반대 논리이다.
MBK가 수년 내에 고려아연을 해외로 매각할 수도 있다는 의혹도 반대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MBK가 공개매수에 활용하는 펀드에 중국계 자본이 참여하여 이런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MBK와 같은 투기적 자본이 고려아연을 인수하는 것은 산업경쟁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사건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본질적으로 사모펀드의 M&A에 대한 반감은 자본력을 이용해 멀쩡한 기업을 인수하고 곧 다시 파는 사모펀드의 생리에 기인한다. 특히 적대적 M&A로 경영권을 흔들면 건실한 기업도 분쟁에 휘말려 사업 기회를 상실하고 주주, 임직원, 협력업체 등의 이해관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하는 것이 옳다는 금산분리 시각도 영향을 미친다.
사모펀드를 악마화하는 정서가 우리 사회에 이처럼 널리 퍼져있는 것에 놀랍기만 하다. 사모펀드의 역할을 규범적으로 구분하여 선악을 나누기도 한다. 사모펀드가 대주주 편에서 경영권 안정을 도와주는 우호적 M&A에 나서면 백기사, 경영권을 위협하는 적대적 M&A 편에 서면 흑기사라는 표현이 이를 잘 반영해 준다.
사모펀드의 주요 투자 대상은 기업이며 M&A가 주력사업이다. 자산가치가 시장가치보다 높은 기업을 인수해 정상화한 후 기업가치를 높여 다시 매각, 차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기업을 매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사모펀드는 자본시장의 첨병이며, 메기 역할을 한다. 대주주나 경영진이 기업을 방만하게 운영해 자산가치보다 수익가치가 낮아 시장에서 저평가되면 사모펀드가 이를 인수해 무능한 경영진을 전문경영자로 교체하여 경영효율을 높이고 수익성을 제고해 다시 매각하는 것이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사모펀드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나서 밸류업 프로그램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밸류업을 하지 않으면 적대적 M&A 대상이 되어 경영권을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년 전 외국계 사모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1% 미만의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한 SK㈜ 대주주의 약점을 파고들어 지분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6000원가량이던 SK㈜ 주가는 2년 만에 5만원대까지 치솟았다. 고려아연 주가도 MBK가 공개매수를 선언한 후에 급등, 70만원을 넘겼다.
낙후된 자본시장을 놓아둔 채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한다고 법과 규제를 강화해도 소용이 없다.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강조해도 통하지 않는다. 이런 법석을 떨지 않고도 사모펀드가 기능을 충실히 발휘해 자본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면 지배구조 개선과 밸류업은 저절로 이뤄질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前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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