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수사 지연과 지연되는 정의

2024. 9. 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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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고 2022년 검찰의 수사권이 크게 제한됐다.

수사권을 조정하고 검찰의 권한을 제한한 것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검찰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검찰의 장기미제사건이 수사권 조정 이전보다 30% 이상 증가했고, 6개월 이상 미제사건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의 순기능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검사의 수사권을 아예 없앤다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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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검경수사권 조정 후
수사 지연과 미제 사건 증가
정의실현이 미뤄지는 사회선
피해자 고통, 범죄자만 이익
헌법 벗어난 제도개선 안돼

2021년 검경 수사권이 조정되고 2022년 검찰의 수사권이 크게 제한됐다. 수사권을 조정하고 검찰의 권한을 제한한 것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제도 개선으로 국민의 권리가 증진됐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9년 이후 경찰이 처리하는 범죄 사건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사건 처리 기간은 크게 늘고 있다. 검찰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지난해 검찰의 장기미제사건이 수사권 조정 이전보다 30% 이상 증가했고, 6개월 이상 미제사건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은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되었다. 권한이 확대된 만큼 책임도 늘어났는데, 이에 맞는 인력과 예산은 뒷받침되지 않았다. 업무가 급격히 늘어나고 책임도 커지면서 경찰에서 수사 업무는 기피 분야가 됐다. 유능한 경찰은 수사 부서에서 일하려 하지 않고 수사 부서에 배치되면 빨리 전출해 '수사 부서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경험과 경륜을 갖춘 '베테랑'이 수사 업무를 피하면서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에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원칙적으로 검사가 정해진 기간 안에 기소건 불기소건 종결 처리했다. 바뀐 제도에서는 검사가 보완 수사를 명목으로 사건을 경찰에 돌려보내면 일단 사건이 처리된 것으로 분류된다. 경찰에서 다시 사건을 송치하면 검찰에서는 새로운 사건번호를 부여한다. 사건이 여러 차례 검경 사이를 오가는 '핑퐁 사건'이 드물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범죄 피해자나 고소인은 자기 사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수사 절차가 복잡해진 것과 함께 범죄 형태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수사 지연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수사권 조정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범죄 수법은 진화하면서 수사 지연이 새로운 일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검사의 수사권을 없애고 검찰청을 폐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검찰의 수사 과잉을 막고 공소 유지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 자체는 틀렸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수사권 조정의 순기능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검사의 수사권을 아예 없앤다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 형사사법제도는 영미와 유럽 대륙의 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 나라들은 검사의 수사권을 인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34개국이 검사에게 수사권을 주고 있고, 그중 30개국은 수사지휘권도 주고 있다.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 이스라엘 등 검사의 수사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와 법체계가 다른 나라들이다.

아무리 제도 개선의 방향이 옳더라도 헌법의 범위 안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실현 가능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공기를 오염시키고 탄소를 배출한다고 당장 내일부터 전기자동차만 운행하도록 할 수는 없다. 검찰 수사가 과잉이라는 이유로 검찰청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빈대 잡는다고 집을 태우는 것과 같다. 현 단계에서 검찰청을 폐지하면 수사 지연이 확대되고 검찰이 전문성을 갖고 있는 분야에서는 수사 자체가 마비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정의 실현이 지연되면 범죄자에게는 엄청난 이익이지만 선량한 시민에게는 재앙이다.

우리 헌법은 검사에게 영장청구권을 줘 검사의 수사권을 뒷받침하고 있다. 수사권 없이 경찰이 청구한 영장에 검사는 날인만 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이는 위헌이다. 세계적 헌법 기구인 베니스위원회도 독립된 검찰을 법치주의의 주요 지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형사사법제도의 개선은 헌법에 맞게 주권자인 국민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강일원 변호사(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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