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극장’ 66년만에 폐업···충무로 단관극장 시대 끝내 저물다
“벌써 문을 닫은 거예요? 아쉬워서 어째···.”
백훈정씨(68)가 29일 낮 서울 중구 대한극장 앞을 서성이며 말했다. 충무로의 상징이던 대한극장이 오는 30일을 끝으로 폐업한다는 소식에 경기 양평군에서 2시간을 들여 찾아왔지만, 극장은 캄캄하게 불이 꺼져 있었다. 이미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극장 앞 트럭엔 철거된 의자가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단성사, 피카디리도 좋았지만, 대한극장은 제게 제일 멋있는 극장이었어요.” 백씨는 회상했다. 대한극장은 10~20대 학생 시절 백씨에게 환상을 선사해 준 공간이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벤허> <아라비안 나이트> 등 수 없이 많은 영화를 봤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영화를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상영을 안 한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을 정도로 아쉽다”며 극장 건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958년 상영관이 하나뿐인 단관극장으로 개관한 대한극장이 66년만에 문을 닫았다. 2008년 단성사와 명보극장, 2021년 서울극장이 폐업하고 2015년 피카디리 극장이 CJ CGV에 운영권을 넘기며 대한극장은 서울에서 단관극장의 명맥을 잇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멀티플렉스의 시대에 발맞춰 2001년 상영관을 11개로 늘리기도 했지만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폐업 결정이 내려졌다.
대한극장 운영사 세기상사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오는 30일에 영업을 종료한다고 예고했지만, 극장은 지난달 말부터 영화 상영을 중단했다. 이로써 충무로가 ‘영화의 거리’로 불리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이날 대한극장 앞을 찾은 시민들은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추억이 함께 사라지는 듯하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양영배씨(57)는 손으로 직접 그린 화려한 포스터, 늘 사람으로 북적이던 충무로를 기억한다고 했다. 단성사·피카디리·대한극장을 돌아다니며 하루에 세 번씩 다른 영화를 보기도 했다는 그에게 대한극장은 ‘처음’ 영화를 본 곳이기도 했다. 특히 홍콩 영화에 심취했다는 그는 “당시 주윤발은 거의 신이었고, 남자들의 꿈이었다”며 “이 동네를 올 때마다 꿈을 꾸던 어렸을 때가 기억나는데 결국 대한극장이 없어진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했다.
나이든 세대에게 대한극장은 사랑이 꽃피는 곳이기도 했다. 김연식씨(67)는 대한극장 간판을 올려다보며 40여년 전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가을비 우산 속에>라는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표를 끊고 남는 시간 동안 다방에 가서 이야기를 나눴었다”며 웃었다. 김씨는 “영화를 볼 수 있는 데가 한정적이니 예전엔 암표를 팔 정도였는데, 동네마다 영화관이 들어서고부터는 충무로를 찾지 않게 되더라”고 했다.
세기상사는 대한극장 건물을 문화예술공연 시설로 개조할 계획이다. 내년에 관객 참여형(이머시브) 공연 <슬립 노 모어>를 선보이는 게 목표다. 시민들은 ‘단관극장’ 문화가 보전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은효진씨(76)는 ‘대한극장’이라는 간판이 떼어지기 전에 사진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찾아왔다고 했다. 은씨는 “60~70대에게 극장은 유일한 데이트 장소였고, 만남의 광장이었다”며 “서울의 마지막 극장이 이렇게 사라지는 게 서운하다”고 했다.
단관극장 시절의 추억이 없는 아동·청년들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저무는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극장’에 관심이 많은 김노아군(10)은 직접 ‘대한극장이 9월30일부로 운영이 종료됩니다’ ‘CLOSED(닫힘)’이라 적은 손팻말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찾아왔다. 김군의 아버지 김사무엘씨(43)는 “저희 가족은 외국 생활을 오래 했는데, 그럴수록 오래된 것의 귀중함을 알겠더라”며 “충무로의 역사와 추억을 간직한 공간이 보존됐다면 더 뜻깊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이 기대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진형씨(26)는 “엄마에게 유명한 극장이란 얘기를 들어와서 정이 들었는데, 문을 닫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는 “아쉽지만 새로워질 모습이 기대도 된다”며 “이 거리가 보다 활기차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opinion/yeojeok/article/202405011805001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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