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규제보다 전세대책이 우선이다[권대중의 경제 돋보기]
에스크로 도입해 거래 투명성 높여야
서울·수도권 아파트 전세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대출 규제와 입주 물량 감소 여파로 올가을 전월세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R114에 따르면 9월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5036가구로 전년 동기와 비슷하지만 수도권은 지난해와 비교해 9% 감소한 8906가구가 입주한다고 한다. 임대차 시장에서 새 아파트 공급이 줄면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전월세 가격은 상승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8월 인천과 경기 전세가격 전망지수는 전월 대비 모두 상승한 119.5, 116.1로 전세가격이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더 커졌다. 서울 전세가격 전망지수도 122.7로 상승 전망이 더 크다. KB부동산 전세가격 전망지수는 기준선 100.0을 초과할수록 상승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이 와중에 정부는 가계부채 증가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9월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를 시행했다.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도 중단되거나 규제가 강화된 상태에서 매매 수요가 전월세 시장에 머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전세금 대출마저 중단한 상태이다. 무주택 서민들은 불안하다.
정부는 깡통전세, 역전세가 나타나면서 전세사기 사건이 늘어난 이후 비(非)아파트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아파트로 몰리는 현상이 아파트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8월 8일 비아파트 부분의 공급 확대는 물론 일정 금액 이하의 주택을 구입해 일정 기간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는 경우 주택 수에서도 제외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여전히 비아파트에 대한 인기는 시들하고 빌라 세입자들도 불안하다.
처음부터 임차인을 의도적으로 속이려는 행위는 분명 사기이다. 그러나 시장환경이 악화돼 매매가격은 물론 전세가격이 하락하면서 깡통전세나 역전세가 나타나 문제가 된 경우는 엄밀히 말해서 사기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모두 전세사기로 몰려 조사를 받거나 구속됐다. 그것도 중개를 한 모든 사람을 처벌한다.
전세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정부의 의도대로 당연히 서민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예전부터 내려오던 전세 제도를 바꿀 수 없더라도 전세금을 얼마라도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에스크로(Escrow) 제도 도입이다. 에스크로 제도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전세보증금을 직접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또는 신탁사 등 금융기관이나 보증기관)을 중간에 껴서 임차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은 후 보관하는 제도를 말한다. 즉 임대 기간이 만료될 때까지 은행이 보증금을 보관하게 되고 만료 시 임차인에게 은행이 보증금을 지급하는 전세보증금 예치 제도를 말한다. 전세보증금 전액이 아니라면 최소한 일정 부분이라도 예치해두는 제도는 필요하다.
물론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취급하는 공적기관 HUG(주택도시보증공사)를 이용하면 좋을 것이고 HUG는 다시 은행을 정해 임대인에게 예치 금액에 대한 이자 상당액을 지불하면 될 것이다. 당장 우리나라에 에스크로 제도가 없어 부동산 매매 또는 임대차 계약 과정에 사기를 당하거나 중도 파기되는 등 예상치 못하는 거래 사고가 종종 발생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중개 사고에 대해 법률상 피해보상을 받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공인중개사의 책임이 분명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당사자 책임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에스크로 제도가 도입되면 임대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또 다른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방편이 되기도 한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를 도입한 이후 공적 보증기관인 HUG가 전세 사고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 HUG 자료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규모가 2021년 5790억원에서 매년 증가해 2022년 1조1726억원, 2023년 4조3347억원, 2024년 상반기에만 2조6592억원이나 됐다. 지금과 같이 빌라 등 비아파트 시장 침체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전세 사고는 계속 증가할 수 있다. 단계적으로라도 전세보증금에 대한 에스크로 제도가 도입된다면 비아파트 부분의 매매 또는 전세 거래에서 사기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부동산계약의 투명성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HUG의 전세보증금 보증금액도 낮춰야 하며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여 일정 금액을 금융기관 등에 예치하는 비율도 사회적 합의는 필요하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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