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필수의료 무너진 나라 원하나

김정곤 기자 2024. 9. 2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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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바이오부장
여야 대립, 의정 갈등에 분노넘어 조소
언제까지 의대증원 숫자에 매몰될건가
미래 없는 소모전, 결국 피해자는 국민
필수의료 살리는 의정 대화 문 열어야
김정곤 바이오부장
[서울경제]

지금 우리는 같은 철로 위에서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2대의 기관차가 정면충돌하기 직전의 위기에 빠져 있다.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현안에서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하는 여야 정치권, 8개월째 의대 정원 증원을 놓고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는 의정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같은 여권에서도 당과 정이 갈등하고 당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넘어 조소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 8개월간 의정 갈등이 남긴 후유증은 크다. 냉정하게 되돌아보자.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 정책에 국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2006년 이후 19년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 그리고 건강보험 수가 불균형이 지역·필수의료 붕괴를 초래했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추세를 고려할 때 의사를 더 늘려야 한다는 데 다수가 공감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매끄럽지 못했다. 정부는 ‘2000명 증원’이라는 숫자를 고수했고 이에 강력 반발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의정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결과는 우려했던 것 이상이다. 소위 ‘빅5’ 등 대형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근무하던 전공의 1만 3000명 가운데 1만여 명이 아직 복귀하지 않고 있다. 응급실 당직 등 필수의료를 맡았던 인력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일반 병의원에 취업하거나 해외 취업, 개원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취업한 일반의 가운데 절반 이상이 돈이 되는 피부과·성형외과·정형외과를 선택하고 지역도 수도권에 편중되는 등 필수의료 외면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결국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이 1509명 증원됐지만 의정 대화 창구는 완전히 닫혔다. 정부와 의료계의 신뢰에 금이 가면서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의정 갈등이 해소될 계기를 만들 몇 번의 결정적인 장면도 있었다. 우선 4·10 총선 직전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전공의 대표의 만남이다. 그러나 만남의 결과는 박 대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남긴 한 줄의 짧은 글만큼 허망했다. 의대 교수, 개원의 등이 주도해 만든 대한의사협회 산하 ‘올바른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의료계가 먼저 대화협의체를 설치한 경우다. 의료계 단일 창구로 기대를 모았지만 핵심인 전공의 단체가 불참한 데다 임현택 의협 회장의 리더십이 도마에 오르며 한 달여 만에 해체됐다.

의료 공백 이후 처음 맞는 명절 연휴를 앞두고 응급실 대란 우려가 컸던 상황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여야의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것은 또 다른 결정적 장면이다. 의료계는 물론 대통령실을 포함한 정부·야당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의정 갈등 해소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살아났다. 그러나 여야의정협의체는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 첫 단추도 끼우지 못했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현실 인식 차이와 갈등만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의정 갈등의 와중에 의료계의 민낯도 드러났다. 임 회장은 SNS 글 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논란을 부추겼다. 의협 내부에서조차 탄핵을 논의하며 비토하는 분위기다. 박용언 의협 부회장도 간호사 단체 폄훼로 논란을 보탰다. 한 전공의는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의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구속됐다. 이들의 감정적인 대응은 의료계를 서로 다른 목소리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로 만들고 의정 대화를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의정 갈등은 언제 해소될 수 있을까. 의료계 안팎에서는 올겨울 이후 더 큰 위기가 다가올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이제라도 기관사들은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에 급제동을 걸어야 한다. 승객인 국민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라면 필수의료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진정 필수의료가 무너진 나라를 원하나. 정부도, 의료계도 결코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열차가 정면충돌하는 파국만은 막아야 한다. 의대 정원 증원이 의료 개혁의 끝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정 대화의 문은 다시 열려야 한다. 필수의료를 살리는 의료 개혁은 정부 혼자만의 힘으로 해낼 수 없다.

김정곤 기자 mckid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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