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렸다고 다 아동학대 아냐" 부모 혼란 줄일 지침 공개
아동학대 사회적 관심 늘며
신고건수 3년새 75% 증가
훈육 기준에 사회적 합의 없어
정당 행위도 신고받기 일쑤
교권추락 등 부작용 나오자
경찰, 172건 사례 분석해 발표
A교사는 가르치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자 "○○는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2학년 때 공부 안 하고 왔다 갔다만 했나 봐"라고 발언했다.
A교사의 발언은 아동학대 범죄에 해당한다. A교사는 재판에 넘겨졌고 법원은 A교사에 대해 "공개된 교실에서 여러 명의 동급생이 있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고 반복적으로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피해 아동에게 상당한 모멸감 내지 수치심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아래 사례는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버지 B씨는 자신의 11세 아들이 보육원에 가겠다고 길바닥에 누워 발버둥 치자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아들의 등을 손바닥으로 1~2회 때리고 차 안에서 2~3대 밀 듯이 때렸으며 아들의 양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B씨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 아동이 정차한 차에서 뛰어내렸으며 차 안에서 발버둥 치는 아동을 어떻게든 다시 집으로 데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해 신체적 학대로 인정하기 어렵고 설령 신체적 학대라 하더라도 훈육하려는 의사로 이뤄졌으며 사회 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아동에 대한 훈육 방식이 의도와 다르게 법에 저촉되는 행위가 될 수 있어 명확한 기준 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경찰이 아동학대 판단 지침을 내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가정·학교 내 아동학대 및 훈육 판단 지침서'를 발간했다고 29일 밝혔다. 학대와 훈육 간 모호한 경계로 인한 혼란을 줄이기 위한 차원이다.
최근 아동에 대한 훈육 허용 기준은 갈수록 엄격해지는 추세다. 201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교사의 체벌 금지를 명시했고, 2021년 민법상 징계권이 삭제되는 등 아동학대 여지를 제공할 수 있는 행위가 단계적으로 금지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2020년 양천구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2020년 1만6149건이던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23년 2만8292건으로 75% 증가했다. 가정 내 아동학대 사건 처리 건수는 2020년 4538건에서 2023년 1만554건으로, 집단보육시설 아동학대도 같은 기간 571건에서 1394건으로 급증했다.
다만 훈육과 학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현장의 혼란은 갈수록 커져갔다. 국수본은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으나 구체적인 아동 훈육 범위에 관해 법이나 판례, 사회적 합의 등으로 정해진 것이 부족해 부모의 일반적인 훈육 행위도 아동이 신고해 경찰이 출동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지침서는 법원의 유무죄 판결 및 검찰의 불송치, 경찰의 불입건 사례 등 총 172건을 15가지 기준으로 분류하고 가정·학교·보육시설 영역으로 나눠 다양한 상황별 훈육·학대 판단 기준과 수사 착안 사항을 설명했다.
예를 들어 아버지 C씨의 행위는 아동학대에 해당한다. 그는 자신의 3세 아들이 양치하던 중 소리를 지르자 화가 나 손으로 아들의 왼쪽 뺨을 1회 때렸다. 법원은 C씨에 대해 "친부로서 피해 아동을 양육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신체적·정서적 학대 행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반면 어머니 D씨의 사례는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 D씨는 승용차 안에서 자녀가 고집을 부리며 물건을 이유 없이 버려 이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자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자 손바닥으로 자녀를 2회 폭행하고 차에서 내리게 했다.
검찰은 D씨에 대해 자녀가 움직이는 차량 안에서 창문과 차량 문을 열려고 하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는 과정이었으며 D씨가 이를 제지하자 자녀가 먼저 D씨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아 이를 떼어놓기 위해 손으로 2회 가격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기 위한 정상적인 훈육 범위라고 보고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70여 쪽의 책자 형태로 발간된 이번 지침서는 현장 경찰을 비롯해 교육부, 보건복지부, 관계 시민단체 등에 배포될 예정이다. 그 외 자료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경찰청 누리집에 들어가 받아볼 수 있다.
[권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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