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앓아눕고, 학교 대신 거리로”···79년 지나도 풀리지 않은 강제동원 유족의 한
서태석씨(84)의 부친은 1941년 10월쯤 일제에 의해 남태평양으로 강제동원 됐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어머니는 앓아누웠고 서씨는 14살이 되던 무렵부터 학교 대신 거리에 나가 과자와 담배를 팔았다. 부친의 모습은 동료가 건네준 사진 한 장이 전부다
박진주씨(76)의 부친은 1945년 8월 24일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 마루호 폭발사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강제동원 피해자다. 고향으로 돌아온 부친은 실어증에 걸린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안에서 술만 마셔댔다. 부친의 등에는 채찍으로 인한 깊은 상처가 있었다. 할머니는 이 상처를 볼 때마다 분노했고 결국 화병으로 돌아가셨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들이 피해 사례를 고발하고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 사죄와 대책을 촉구하는 고발대회가 지난 28일 광주에서 진행됐다.
이날 고발대회에서는 서씨와 박씨를 포함한 유족들 5명이 가족이 겪은 고통 등 사연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유족들은 광복 7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상처와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일제의 만행을 잊지 않기 위한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천양기씨(72)는 일제에 의해 백부(큰아버지)를 잃었다. 남편을 기다리던 백모(큰 어머니)도 한국전쟁 중에 사망했다. 천씨는 사망자나 행방불명자 유족에게 지급되는 정부 위로금 2000만원을 가족 장학금으로 적립해 입학이나 졸업 등에 손주들한테 지급하고 있다.
박철희씨(67)는 할아버지는 일제에 의해 제주도의 해안 진지 공사 현장에 가족들을 대신해 강제 투입됐다. 할아버지는 가까스로 고향에 돌아오게 됐지만, 당시 불의의 사고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동료 118명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제주도에 동원된 광부들의 명부 제공을 일본에 촉구하는 등 참상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일제 국외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는 2024년 기준 904명이다. 생존 피해자는 2023년 1264명이었으나 1년 사이 360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번 고발대회는 행정안전부 산하 재단으로부터 배상을 받게 하는 ‘제3자 변제’ 방식과 유네스코에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에 조선인 강제동원 내용이 빠진 점 등 정부의 정책과 대응 비판하고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강제동원 피해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후유증과 상처가 가족들에 대물림되고 있지만 유족들의 나이도 70~80대에 이르고 있다”며 “일제의 전쟁범죄를 고발할 피해자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현실 속 이들이 외롭게 싸우고 잊히지 않도록 계속된 관심을 바란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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