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디단 격려 :) [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한겨레 2024. 9. 2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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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연, ‘홀마크 프로젝트-격려2’, 2015, 캔버스에 유채, 112.1×145.5㎝. 성곡미술관 ‘정소연: The Pink Moment’전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가을은 대학입시 시기이다. 오래전에는 이웃이나 친지 사이에서 알고 지내는 수험생이 있으면, ‘힘내자’하고 응원하곤 했는데, 요즘에는 아무 말 않는 게 대세다. 이모티콘에 등장하는 귀엽고 엉뚱한 캐릭터들이 직접 말해야 하는 쑥스러운 상황을 대행해 주니, 마음을 전하는 일이 이제는 간접적인 형태가 되어 있다. 사랑한다고, 혹은 고맙거나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을 때도, 딱 알맞은 이모티콘을 선택하기만 하면 감정 번역이 완료된다. 이모티콘이라는 단어 자체가, 감정을 뜻하는 ‘emotion’과 대표 이미지를 나타내는 ‘icon’이 합해진 것이니, 내 감정을 대표해 주는 이미지가 맞다.

지난 주말에 지인의 어머니 장례식장에 갔었다. “슬픔이 얼마나 크시겠어요”하고 상주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넨 것까지는 자연스러웠는데, 배춧국에 밥 한그릇 먹은 뒤 자리를 떠날 때였다. 나는 배웅하는 지인에게 “수고하세요”라고 말했고, 아뿔싸, 어울리지 않는 그 말은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가 분주하게 문상객을 챙기며 애쓰고 있기에, 나도 모르게 수고하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핑계를 찾자면, 편리한 이모티콘에 의존하다 보니, 어느새 내 말로 진심을 표현하는 게 어려워진 모양이다.

이모티콘이 없던 시절에는 말 대신 그림 카드를 주고받곤 했다. 마음에 쏙 드는 카드를 고르려고 친구와 약속을 잡고, 버스 타고 대형 문구점까지 나가는 게 재미였던 어린 시절이 내게도 있다. 티슈의 대명사가 크리넥스라면, 축하 카드의 대명사는 홀마크이다. 1910년에 창립된 미국의 카드회사인 홀마크는 각종 기념일에 잘 어울리는 감동의 문구와 기분 좋은 이미지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핵심 역할을 해왔다.

여러 사회문화적 현상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정소연 작가의 전시가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작품 중에 환한 파스텔 색상을 화면 전체에 쓴 ‘홀마크 프로젝트’ 연작이 있는데, 감정의 기호가 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축하나 격려를 떠올릴 때 즉각적으로 따라오는 풍선, 하트, 폭죽, 꽃다발, 케이크, 별, 요술봉 등은 어쩌면 카드사에서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우리 머리에 각인된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그런 대중적 이미지를 경유하지 않고, 추상적인 소망과 행복의 개념을 전하기란 쉽지 않다.

‘홀마크 프로젝트-격려2’를 보면,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있는 배경 위로 슈퍼맨의 옷에 새겨진 에스(S)자도 있고, 가운데에는 ‘스마일’이라고 씌어있는 행복 나라의 자동차 표지판도 나온다. 노랗고 동그란 스마일 얼굴도 둥둥 떠다닌다. 번역하자면, ‘당신에겐 슈퍼맨 같은 초능력이 있으니, 해낼 수 있어. 스마일 나라의 주인공은 당신이지’라는 메시지이다.

스마일 얼굴은 부호로 :), 한국인에게는 ^^에 해당한다.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이 부호를 문장 곳곳에 끼워 넣으면, 부드러운 뉘앙스를 준다. 문제는 이게 빠지면 냉랭한 어조로 읽힌다는 것이다. 습관이 된 스마일 부호는 진짜 미소가 아니라, 그저 상냥함을 위한 가면의 미소로 변질됐다. 홍은택이 쓴 미국 여행기,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에 스마일 얼굴에 대한 글이 실려있다. 아이오와주를 지나다 보면, 볼 것이라고는 높이 세워진 노란색 물탱크 탑에 그려진 스마일 얼굴뿐인 마을이 있다고 한다. 처음 봤을 때는 긍정적인 인상을 받지만, 그 마을 안에서 물탱크의 스마일 얼굴을 계속 마주치는 경험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가끔 감시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특히 고통스러운 순간에 위를 올려 보면 그 얼굴은 활짝 웃고 있어서 섬뜩하단다.

또 한 예로, 매사추세츠주의 어느 보험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스마일 얼굴을 항상 가슴에 붙이도록 했다. 사내 화합을 위한 것이기도 했고, 고객을 웃으며 맞자는 의미이기도 했다. 내가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미소로 무표정을 감추는 것, 이것이 스마일 얼굴의 본질이다.

올 초부터 입가에 맴도는 비비의 노래 ‘밤양갱’을 내 글에 맞게 해석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밤양갱’은 연인으로부터 ‘너는 바라는 게 너무 많다는’ 이유로 이별 통보를 받은 뒤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나는 상대가 밤양갱을 주지 않아 서운하다. 밤양갱은 입맛을 버릴 만큼 지나치게 달지도 않으며, 눈을 어지럽힐 만큼 예쁜 색도 입혀지지 않은, 포장 없는 알맹이 그 자체다. 나는 알맹이 진심을 원했을 뿐인데, 상대는 진심을 드러낼 방법을 잊은 것일까. 아니면 아예 진심 자체를 잃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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