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모두가 실업률에 바짝 주목하는 이유 [취재파일]

임태우 기자 2024. 9. 2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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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는 언제 올까?"

전 세계 경제계의 뜨거운 화두입니다. 마치 폭풍 전야 속 고요가 찾아온 것처럼 전 세계는 각종 지표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다가올 위기를 예측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비관론의 선두 주자는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입니다. 지난달 이 은행은 올해 미국의 경기 침체 확률을 35%로 전망했습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기존 전망치인 25%보다 10%포인트 더 높인 겁니다. JP모건의 브루스 카스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노동 수요가 예상보다 급격히 약화되고 있으며, 인력 감축의 초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더욱이 내년 하반기까지의 침체 확률은 45%에 달합니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근 "올해 경기 침체는 없을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쳤습니다. 일자리 증가 둔화와 GDP 성장 약화를 동반한 '험난한 연착륙'은 예상되지만, 완전한 경기 침체는 오지 않을 거라는 주장입니다. BofA는 미국 소비자들이 여전히 약 3천억 달러의 초과 저축을 보유하고 있으며, 과거 경기 침체 시기와 비교해 양호한 재정 상태에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렇게 상반된 전망 속에서 우리는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까요? 주목할 점은 두 금융 거인 모두 '실업률'을 경기 침체 예측의 핵심 지표로 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JP모건은 미국 고용 시장의 급격한 악화가 임박했다고 경고했고, BofA는 노동 시장 약세 우려를 일축한다고 밝혔습니다. 왜 이들은 실업률에 그토록 주목하는 것일까요?

실업률은 경제의 '체온계' 역할을 합니다. 이 지표는 전반적인 경제 상황과 밀접한 노동 시장의 현주소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흔히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을 줄이고, 이는 실업률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실업률이 오르면 경제 활동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가계 지출이 감소합니다. 이는 다시 기업들의 수익 감소로 이어져 경제 전반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들게 됩니다.


실업률의 장점은 측정하기 쉽고 신뢰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매달 발표돼 경제 상황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합니다. 산업별이나 성별, 연령별, 지역별, 교육 수준별, 실업 기간별 등 다양한 인구 특성에 따른 노동 시장 상황을 보여줍니다. 또, 실업률 계산 방법론이 잘 정립돼 있고 시계열적으로 일관성이 있어 의미 있는 비교가 가능합니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선 좀 더 진전된 실업률 해석 방법으로 '샴의 법칙'에 주목합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이코노미스트 클라우디아 샴이 제안한 이 법칙은 "실업률의 3개월 이동평균이 지난 12개월 중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오르면 경기 침체"라고 규정합니다. 이 법칙이 주목받는 이유는 적시성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GDP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 기준과 달리, 샴의 법칙은 더 빨리 경기 침체의 징후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마치 체온이 오르기 시작할 때 즉시 이상을 알아채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경기 침체 예측에 실업률만 사용되는 건 아닙니다. 자주 쓰이는 다른 지표로 장단기 금리차가 있습니다. 이 지표는 시장 참여자들의 현재와 미래 경제에 대한 기대를 반영합니다. 일반적으로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높지만, 경기 침체가 예상될 때는 안전 자산인 장기 채권 수요가 늘어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합니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금리 역전 후 1~2년 내에 경기 침체가 발생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장단기 금리차 지표에 대한 신뢰는 점차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주요 중앙은행들의 대규모 자산 매입 프로그램이 수익률 곡선을 왜곡했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2022년 7월 IMF 경제 리뷰에 실린 '텍스트 기반 경기 침체 확률(Text-Based Recession Probabilities)'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신문 기사에서 '침체' 단어가 언급된 비율을 지수화한 방법이 오히려 장단기 금리차 지표보다 10~40%포인트 더 높은 예측 정확도를 보였습니다.


실업률이 최선의 판단 도구이긴 하나, 맹점도 존재합니다. 첫째, 실업률은 구직 단념자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구직 활동을 하다 포기한 기간이 오래되면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됩니다. 둘째, 불완전 고용 상태를 반영하지 못합니다. 전문직이나 고학력 실직자가 생계를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에도 통계상 '취업자'로 간주됩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경력에 맞지 않는 일을 하기 때문에 고용으로 보기 어렵지만, 통계에는 반영되지 않는 겁니다. 이러한 '숨겨진 실업'은 경제를 실제보다 건강하게 보이도록 왜곡합니다. 마지막으로, 실업률은 종종 경기 후행 지표가 됩니다. 경제가 악화된 후에야 실업률이 상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실업률과 함께 다른 지표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GDP 성장률, 소비자 신뢰지수, 제조업 지수, 실업보험 청구 건수 등이 대표적입니다. 미국 리치몬드 연방준비은행의 안드레아스 혼스타인 이코노미스트는 "실업률 변화는 경기 침체의 좋은 지표지만, 시차를 둔 금리 스프레드와 결합될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많은 전문가들이 경기 침체를 예측하려 할까요? 이는 큰 태풍이 오기 전 각종 위험에 대비하려는 노력과 같습니다. 경기 침체는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닌, 우리의 삶에 커다란 피해를 줄 수 있는 강력한 태풍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심각한 경기 침체는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1929년 대공황 때 미국 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고,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우리나라의 1997년 외환위기도 수많은 기업과 가정을 파탄 냈습니다.

경기 침체는 도미노처럼 연쇄 반응을 일으킵니다. 기업들의 매출 감소는 직원 해고로 이어지고, 실직자들의 소비 감소는 다시 기업 매출을 줄이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항상 서민층이었습니다.

봄과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사계절이 순환하듯 경기 침체도 언젠가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 준비하듯 우리도 경기 침체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충격을 완화하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가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일터를 파국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모두가 실업률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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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우 기자 eigh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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