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욱의 올어바웃 스포츠] 만찢남 오타니 맹활약에 비틀대던 MLB도 홈런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2024. 9. 2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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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메이저리거와 그 아내는 아이들에게 식사하기 전 '엄마, 아빠 그리고 베이브 루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라고 기도하게 해야 한다."

1920~1930년대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의 투수 웨이트 호이트는 팀 동료인 베이브 루스에 대해 이런 찬사를 보냈습니다. 루스가 일으킨 '홈런 혁명'을 보기 위해 관중이 몰려들었고, 야구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선수들의 급여도 높아졌습니다. 호이트 역시 수혜를 받은 인물 중 하나였지요.

'최초의 슈퍼스타' 루스가 야구인 가족의 식사 기도에 들어간다면 LA 다저스의 '이도류' 오타니 쇼헤이는 최소 디저트 정도는 책임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투수와 타자로서 모두 MLB 최정상급 기량을 보여주는 오타니는 최근 '50홈런·50도루'란 전인미답의 경지를 밟으며 또다시 야구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혹자는 오타니의 위치가 루스에 근접했거나 이미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합니다.

오타니가 이 시대의 베이브 루스로 여겨지는 것은 투타 겸업에 도루까지 잘하는 역대급 운동선수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만큼 생산성을 보여주는 타자는 올해만 해도 1~2명 정도는 꼽을 수 있습니다. 오타니의 진정한 가치는 야구계가 그렇게 찾아 헤맸던, 야구를 넘어서는 '슈퍼스타'란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야구는 몰라도 오타니는 아는 사람을 매일 양산하는 오타니의 스타성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야구의 얼굴이 누군데?" 등 돌렸던 팬들

2017년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이 게재한 특집기사 'MLB의 슈퍼스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는 야구판을 흔들어놓습니다. 기사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 선수 50명 중 야구선수는 3명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심지어 13위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 야구인은 '뉴욕의 남자' 데릭 지터로 2014년에 다이아몬드를 떠난 은퇴 선수였습니다. 30위는 근 100년 전 인물인 베이브 루스였고, 50위는 1980년대 선수인 피트 로즈였습니다. MLB를 대표할 만한 슈퍼스타가 없었던 것이지요. ESPN은 "얼굴이 없는 스포츠를 정말로 국민적 오락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고 되묻습니다.

물론 당시 MLB가 선수들의 실력이 떨어졌다거나 고만고만한 선수들로 채워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2011년 데뷔한 마이크 트라우트는 다른 선수와 아득한 실력 차를 보이며 역대 최고의 선수를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당장 은퇴해도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도 받으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트라우트는 전형적인 MBTI 'I형' 인물이었습니다. 토크쇼나 국가적 후원 행사 초대는 번번이 거절했고, 올스타전 홈런더비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죠.

사정이 이러니 공고한 위치를 자랑했던 MLB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공교롭게도 ESPN이 '얼굴 없는 MLB'를 지적한 2017년은 2003년 이후 14년 만에 경기당 평균 관중 수가 3만명을 밑도는 등 인기 저하가 눈에 띄게 보이는 시점이었지요.

'무주공산' MLB에 상륙한 오타니

MLB를 둘러싼 위기감이 고조된 2018년. 오타니가 LA 에인절스와 계약하며 빅리그의 문을 두드립니다. 오타니 이전에도 일본프로야구(NPB)를 정복하고 태평양을 건너간 선수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스즈키 이치로부터 다르빗슈 유, 다나카 마사히로 등 NPB 정상급 선수들은 모두 나름대로 MLB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죠.

그러나 오타니는 그들과 달랐습니다. 빅리그 입성 직전 일본 무대를 완전히 평정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스타성은 전무후무한 상황이었죠. 그는 일본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올해 초 오타니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결혼 소식을 발표했을 때, 일본 주요 방송들은 정규 편성을 중단하고 긴급 생방송으로 타전할 정도였습니다.

오타니의 화제성은 미국에서도 계속됩니다. 해마다 부침은 있었지만 그가 추구한 '이도류(투타 겸업)'가 현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동양 특유의 예의 바른 자세와 경기에 임하는 태도, 잘생긴 얼굴과 탄탄한 몸 등 "슈퍼스타란 이런 것이다"를 여실히 보여줬지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오타니가 입성한 뒤 MLB 역시 차츰 예전의 인기를 회복합니다. 한때 경기당 2만8000명대까지 떨어졌던 관중 수는 차츰 회복하더니 코로나19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만9000명대로 올라선 후 올해도 소폭 상승한 상황입니다.

이런 '오타니 효과'는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졌습니다. 올해 6월 미국 텍사스대는 '슈퍼스타는 정말 희소하다: 오타니 쇼헤이와 야구 관중 수'란 논문을 통해 오타니 효과를 증명해냈습니다. 오타니는 타자로는 매 경기 출전하지만 투수로는 5~6경기마다 한 경기씩 선발로 나서왔습니다. 연구는 2018~2022년 오타니가 선발 출전한 홈·원정 경기와 그 외 경기의 관중 수를 회귀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오타니가 선발 등판하는 원정경기는 관중 수를 평균 15.7%(4250명) 증가시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평균 티켓 값을 적용하면 연간 약 225만달러(30억원)가 오로지 오타니에 의해 벌린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는 오타니가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이후 가장 큰 원정 관중 효과를 부른다고 말하며, 리그 차이를 감안하면 조던에 비한다고까지 표현했습니다.

오타니 경제효과…"7억달러가 싸보이네"

지난해 시즌이 끝난 후 야구판 관심사는 오로지 오타니의 차기 행선지였습니다. 차세대 MLB 슈퍼스타로 거듭나고 있던 오타니가 어디에 둥지를 트는지가 야구판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듯 LA 다저스가 오타니를 붙잡습니다. 경기당 관중 수가 MLB 30개팀 중 가장 높은 팀이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지요. 심지어 계약 규모 역시 10년간 총액 7억달러(약 9300억원)라는 스포츠 역사상 최대 계약을 안겨주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LA 다저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오타니의 계약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온라인 세계는 오타니로 뒤덮였습니다. 미국 내 오타니 계약에 대한 검색량은 이후에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 정세를 가르는 주제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쏠리는 것은 이목뿐 아니라 돈도 있었습니다. 오타니의 유니폼 판매량이 MLB 전체 1위였던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LA 다저스의 홈경기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비출 때 나오는 '타석 광고'는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매진됐습니다. 심지어 LA 다저스와 원정경기에서 팔리는 광고를 사들인 일본의 브랜드만 30개로 집계됐습니다.

스포츠 마케팅회사인 스폰서유나이티드는 올해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휴식기 이전까지 일본에 지사나 본사를 둔 59개 회사가 MLB 및 MLB팀과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고 집계했습니다. LA 다저스 역시 오타니가 합류한 뒤 전일본공수, 다이소 등 10개의 일본 브랜드를 스폰서나 광고주로 유치했지요. 밥 린치 스폰서유나이티드 대표는 "LA 다저스는 올해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높은 신규 수익을 창출하는 팀이 될 것"이라며 "금액은 3000만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말 그대로 슈퍼스타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야구의 얼굴'이 된 현대의 베이브 루스

2021년 미국 스포츠 방송 업계의 호사가이자 악동인 스티븐 A 스미스는 "영어를 못 하는 오타니는 절대 야구의 얼굴이 될 수 없다"고 독설을 날린 바 있습니다. 그는 "야구의 얼굴이 통역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야구에 도움이 안 된다"고 떠벌렸죠. 현시점에서 보면 스미스가 얼마나 얕은 통찰을 내비쳤는지 체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MLB가 오타니를 얼굴로 내세우길 주저하지 않은 것은 그토록 원했던 MLB의 국제화가 그를 통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구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가 모두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미국인이 아닌 얼굴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커스 콜린스 미시간대 마케팅학과 교수는 "스포츠는 예전보다 훨씬 더 국제화됐고, NBA처럼 스포츠는 진화하고 있다"며 "글로벌한 스포츠 리그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해당 스포츠의 원형(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NBC에 말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오타니에게 들어맞는 표현이죠.

더 큰 기대감은 오타니가 아직 LA 다저스에서 투수로서 공을 한 개도 던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가장 인기 있는 야구팀에서 '투타 겸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오타니의 슈퍼스타 파워를 우린 아직 목격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과연 '일본의 보물'을 넘어 '야구의 보물'이 된 오타니는 또 어떤 기록과 영광을 얻어낼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 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 원의 몸값과 수천억 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 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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