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민회의 99% vs 분당 재건축 95.9%…‘후폭풍’ 예고한 선도지구 경쟁 [오상도의 경기유랑]
‘최대어’ 분당 평균 동의율 90%↑, 최고 95.9%…과도한 경쟁
“이번 기회 잡지 못하면 재건축 쉽지 않아”…너도나도 합류
100점 만점에 동의율 60∼70점…“정부가 깜깜이 공모 내몰아”
찬성 세대 단톡방에 찬반 주소 나돌아…추석 연휴에도 ‘올인’
공공기여 딜레마 논란…노령 가구 반대에는 ‘인해전술’ 무마
‘승자의 독배’ 후폭풍?… 시장소환·소송 등 부작용 이어질 듯
28일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선도지구는 ‘무늬만 신도시’로 전락한 경기 성남 분당과 고양 일산, 군포 산본, 안양 평촌, 부천 중동의 노후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는 정비사업을 일컫는다. 최소 2만6000가구, 최대 3만9000가구를 지정해 신속하게 재건축 등 정비를 마친다는 내용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분당 8000가구, 일산 6000가구 등 2만6000가구 이상을 선도지구로 선정할 계획이다. 지자체별 상황에 따라 1∼2개 구역을 추가 지정할 수 있어 분당 1만2000가구, 일산 9000가구 등 3만9000가구까지 늘어날 수 있다.
독재국가인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율은 99%에 가깝다. 높은 참여율과 찬성률은 여전히 회자되곤 한다.
첫 재건축 단지 선정을 위해 이달 23∼27일 진행된 이번 공모에선 분당신도시의 한 재건축추진위(공동신청 단지)가 95.9%의 ‘주민 동의율’을 얻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분당의 경우 70%의 단지가 선도지구 공모에 지원했는데, 평균 주민 동의율은 90%를 웃돌았다.
선도지구는 100점 만점의 정량 평가로 진행된다. 배점의 가장 큰 항목은 주민 동의율이었다. 성남·고양·안양·군포시는 주민 동의율이 95%를 넘으면 해당 항목 만점인 60점을 준다. 부천시는 90%를 넘으면 만점 70점을 부여한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주민 동의율 △정주 환경 개선의 시급성 △통합 정비 참여 주택 단지 수 △도시기능 활성화 필요성 등 표준 평가 기준을 제시했는데, 지자체마다 지역 여건을 고려해 세부 기준과 배점이 조금씩 달려졌을 뿐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각 단지는 한 장이라도 더 동의서를 받으려고 막판까지 안간힘을 썼다. 동의하지 않는 가구를 공개해 압박하는 곳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같은 동의율은 추후 지자체의 검증을 거치게 된다.
아울러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른 동과 비교된 찬성 비율이 공개됐다. 빨간펜으로 적시된 ‘미동의’ 세대 수치는 암묵적으로 찬성을 압박했다. 일부 아파트단지 정문에는 ‘재건축에 반대하면 추후 새 아파트를 분양받지 못하고 감정가격으로 현금 청산된다’는 취지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다수 단지의 재건축추진위는 ‘일단 선도지구 지정부터 돼야 나중에 다시 찬반 투표를 거쳐 재건축 여부를 결정할 기회가 생긴다’는 취지의 설명을 주민에게 했다. 자신들의 단지만 집값 상승 기회에서 배제될 수 있다며 겁을 주는 곳도 있었다. 분당지역의 한 주민은 “찬성 세대를 중심으로 꾸려진 단톡방에 어느 날 ‘미동의’ 가구의 동·호수가 공개돼 깜짝 놀랐다”며 “찬성 세대 옆에는 ‘동의’ 표시를, 반대 세대 옆은 공란으로 남겨놔 누구라도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이런 압박이 재건축에 반대 의사를 지닌 노인 등의 의사 결정권을 침해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들은 집값 상승, 주거환경 개선보다는 이주 등으로 5년 넘게 겪어야 할 불편을 꺼리는 상황이었다. 이들에게 해당 아파트단지의 재건축추진위와 지인들은 재산을 상속받을 자녀들에게 돌아갈 혜택을 강조하거나 동네 분위기를 전하며 찬성을 독촉했다.
이른바 ‘깜깜이 재건축’에 대한 논란은 여진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개인 재산(지분)을 지자체에 내놓는 ‘공공기여’가 동의율 못잖게 중요 변수로 떠올랐지만, 향후 어느 정도 재산권을 침해받을지에 대해선 시뮬레이션을 거친 구체적 수치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단지별로 최저치로 책정된 재건축 분담금 예상 수치를 내놓거나, 이마저도 제시하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
한 40대 재건축추진위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가 분담금 등과 관련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향후 선정 단지에선 비용 부담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분당의 경우 이번 공모에선 사업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양지마을, 시범 우성·현대, 샛별마을, 한솔 1·2·3단지, 파크타운, 아름마을 1~4단지, 시범2단지, 푸른마을, 서현효자촌 등의 동의율이 95%에 근접하거나 넘어선 것으로 전해지면서 동의율에선 변별력이 없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남시의 경우 공공기여 5%(6점), 이주대책 지원 12%(2점), 장수명주택 인증(3점) 등을 내걸고 공공기여 추가 제공 1%에 1점씩을 더 주기로 하면서 재건축추진위는 사업성 훼손이라는 딜레마에도 직면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분당지역 52개 단지 연합회가 성명을 내 신상진 성남시장의 주민소환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당시 성남시가 내놓은 공모 지침에 상가동의율이 제외되면서 불공정 시비가 불거진 탓이다. 이들은 성남시가 유독 공공기여를 강조하면서 분담금이 늘고 사업성이 떨어졌다고 주장해 11월 선도지구 선정 이후 줄소송이 벌어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성남=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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