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범죄 앞, 당신의 ‘선’은 어디까지인가···스릴러 도전 ‘멜로 거장’ 허진호 감독
허진호 감독은 ‘한국 멜로영화의 거장’이라고 불린다. 첫 작품인 <8월의 크리스마스>(1998)부터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 걸작이었다. 이어 <봄날은 간다>(2001) <외출>(2005) <행복>(2007) <호우시절>(2009) <위험한 관계>(2012)까지 멜로영화의 길을 걸었지만 거기 머무르지 않았다. 영화 <덕혜옹주>(2016)와 <천문: 하늘에 묻는다>(2021)로 시대극을, <인간실격>(2021)으로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번에는 다음달 16일 개봉하는 영화 <보통의 가족>으로 스릴러에 처음 도전했다.
“가족이 연관된 윤리적 문제들이 요즘 많이 나오잖아요. 선해 보이는 사람도 다양한 면을 가졌고요.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기보다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허 감독은 “이제까지 제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저도 아이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는 문제로 보였다”고 말했다.
<보통의 가족>에는 두 상류층 가족이 등장한다.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합리적인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도덕을 중요시하는 따뜻한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는 형제다. 재완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 ‘지수’(수현)와, 재규는 사회 봉사활동에 열정적인 번역가 ‘연경’(김희애)과 결혼했다. 이들은 어느날 자식들이 만취해 노숙인을 폭행하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발견한다. 자식의 범죄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가치관들이 충돌하며 ‘윤리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허 감독은 “자식들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재완도 재규도, 누구나 어떤 ‘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뉴스에서 어떤 흉악범이나 정치인을 보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직접 만나보면 다들 자신만의 가치를 갖고 있잖아요. 실리적인 선택이 최소한의 윤리가 될 수도 있겠죠.”
허 감독은 멜로 전문가다운 솜씨로 스릴러에서도 캐릭터의 성격과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사실 철저하게 계산해 연출하기보다 배우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장면도 많았다. 김희애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세요”라고 지적하는 대사나 국제구호단체 영상을 보면서 우는 연기는 원래 대본에 없었다. 허 감독은 “내가 얘기한 대로 배우가 안 하는 걸 좋아한다”며 “그 순간, 그 공간, 그 공기에서만 딱 나오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제가 상상하지 않았고 배우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나오는 연기는 정말 살아있는 느낌이 들죠. 잘못된 장면을 살리는 경우도 있거든요. 우연을 가장한 연기는 싫지만요.”
<보통의 가족>은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스릴러지만 의외의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이 있다. 주로 캐릭터가 숨겨왔던 옹졸함과 치졸함이 삐죽 튀어나오는 순간들이다. 일종의 부조리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도 제가 ‘왜 웃지?’ 생각할 정도로 관객이 많이 웃더라고요. 선뜻 접하기 어려운 영화일 수도 있잖아요. 관객에게 더 다가가기 쉽지 않을까 싶어서 좋았죠.”
헤르만 코흐의 원작 소설 <더 디너>는 한국에 앞서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에서 영화화됐다. 허 감독의 <보통의 가족>은 이탈리아판을 참고해 형제의 직업 등을 한국 사회에 맞게 ‘한국화’했다. 제목에 대해선 “영어 제목은 왠지 좀 불편했고 한국어로 ‘저녁식사’라고 지을 수도 없었다”며 “제목은 누구나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는 문제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미국 영화가 원작 설정과 가장 가까웠는데 유색인종 문제 등 더 이야기가 복잡했죠. 한국에 가져올 때는 이탈리아 설정이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보통의 가족>은 허 감독의 5년 만의 영화 복귀작이다. 차기작들도 순서를 기다린다. 성소수자의 사랑과 성장을 담은 티빙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은 10월 공개 예정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도 준비 중이다.
“기자시사회 앞두고 장동건이 ‘재판정에 들어가는 심정’이라고 했는데 진짜 그래요.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선 항상 물음표가 있죠.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수익을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영화가 또 만들어져서 영화가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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