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보컬조차도, 린킨 파크는 여전히 ‘린킨 파크’였다
7년 만에 신곡 내고 월드투어…내한공연서 건재 과시
록 밴드 린킨 파크의 데뷔 앨범 ‘하이브리드 시어리’(2000)는 여러모로 신선했다. 록과 힙합에 일렉트로닉 음악(디제잉)까지 합친 하이브리드 록이라니. 1집 ‘원 스텝 클로저’·‘인 디 엔드’, 2집 ‘넘’ 등의 잇따른 성공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트랜스포머’ 오에스티(OST)까지, 린킨 파크는 그야말로 밴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지금껏 전 세계에 1억장 넘는 앨범을 팔았고, 그래미상을 두 차례나 받았다.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앨범 10위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밴드이기도 하다. 이들의 히트곡 모음집은 아직도 하루 900만회 이상 스트리밍된다.
하지만 린킨 파크는 큰 비극을 겪었다. 어린 시절 성 학대로 인한 우울증을 앓던 프론트맨 체스터 베닝턴(보컬)이 2017년 세상을 떠났다. 린킨 파크는 긴 침묵에 빠졌다. 개인적 활동을 한 멤버들이 더러 있었으나 ‘린킨 파크’ 그 자체는 아니었다. 베닝턴의 존재감이 워낙 컸던 터라 밴드는 그대로 화석화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긴 추념의 시간을 끝내고 7년 만의 신곡으로 이달 초 돌아왔다.
새로운 보컬은 여성인 에밀리 암스트롱. 팀의 프로듀서이자 래퍼, 그리고 베닝턴의 절친한 친구였던 마이크 시노다는 보컬의 성별을 바꿈으로써, 또 다른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냈다. 새 보컬이 남성이었다면 끊임없이 베닝턴과 비교됐을 터. 암스트롱은 2005년 만들어진 얼터너티브 록 밴드 ‘데드 사라’ 출신이다. 드러머 또한 롭 버든에서 콜린 브리튼으로 바뀌었다. 베닝턴 사망 이후 버든은 밴드와 거리를 두고 싶어 했다고 한다.
7년 만의 활동 재개와 함께 ‘프롬 제로’ 월드투어도 시작했다. 린킨 파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뉴욕, 독일 함부르크, 영국 런던에 이어 28일 저녁 한국에서 공연을 펼쳤다. 2003·2007·2011년에 이은 네번째이자 13년 만의 내한공연이다.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이날 공연에는 1만4000여명의 팬들이 찾아 밴드의 새 출발을 응원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진행된 콘서트여서 외국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베닝턴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던 팬들은 반신반의하며 암스트롱의 보컬을 처음 접했는데, 의심은 곧 환호로 바뀌었다. 그만큼 관중을 휘어잡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다.
신곡 ‘디 엠프티니스 머신’과 베닝턴의 얼이 서린 ‘기븐 업’ 등을 부를 때는 날것에 가까운 풍부한 성량이 나왔다. ‘2024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주제곡이기도 한 ‘헤비 이즈 더 크라운’(왕관의 무게를 견뎌라)을 부를 때는 10초 이상 고음을 내지르는데, 가슴을 후려치는 처연함까지 느껴졌다. ‘리브 아웃 올 더 레스트’와 ‘마이 디셈버’ 같은 느린 음악에서는 섬세함과 정밀함을 드러냈다. ‘마이 디셈버’가 끝났을 때는 팬들이 하나같이 “에밀리! 에밀리!”를 외치기도 했다.
시노다는 언론 인터뷰에서 “열정이 에밀리의 목소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가 노래할 때는 100% 자신이 된다”면서 “에밀리는 체스터가 되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부분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 “체스터의 레거시(유산)는 레거시대로 두고, 우리는 우리대로 또 다른 새로운 챕터를 쓰려고 한다”고 했다.
린킨 파크의 전신 밴드 이름은 ‘제로’(Xero)였다. 오는 11월15일 발매하는 앨범 제목은 ‘프롬 제로’(FROM ZERO)다. 이중적 의미를 내포했는데, 밑바닥부터 다시 출발하겠다는 밴드의 의지가 엿보인다. 린킨 파크는 “아이 온리 원티드 투 비 파트 오브 섬싱”(I only wanted to be part of something: 난 그저 뭔가의 일부가 되고 싶었어)이라는 가사(‘디 엠프티니스 머신’)처럼 상실감을 극복하고 나름의 희망을 이어가고 있다. ‘트랜스포머’의 오토봇처럼, 차일 때든 로봇일 때든 그들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으니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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