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조의 ‘즐거운 인생’…48년차 ‘더 보컬리스트’의 초대
팔팔했다. 아니 쌩쌩하다고 해야 하나. 일흔이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끔한 미중년의 모습이었다.
1976년 이정선이 만든 ‘나들이’로 데뷔해 올해 데뷔 48돌을 맞은 가수 이광조,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인 현역이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사랑을 잃어버린 나’, ‘연인이여’, ‘즐거운 인생’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그는 오는 10월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지난해 11월 콘서트 뒤 1년 만이다. 콘서트 제목은 ‘더 보컬리스트’. 한국 남성 가수에선 찾기 힘들었던 미성으로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이광조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명품 보컬리스트 이광조를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만났다.
“와! 어떻게 이걸.”
불쑥 엘피(LP)를 내밀어 사인을 요청했더니 이광조가 반색했다. 그의 히트곡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사랑의 밀어를 따라’가 담긴 1985년 발표한 솔로 6집이었다. “이 음반을 이틀 만에 녹음했어요. 그것도 낮에. 전 밤에 노래가 잘 안되더라고요.” 그는 잠시 눈을 감더니 음반 제작할 때를 떠올린 듯했다.
그의 6집 앨범은 이광조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인생의 전환점 같은 앨범이다. 이병우, 조동익, 이태열, 김광민 등 참여 연주자들도 레전드급이다. “당시니깐 가능한 세션들이죠. 요즘엔 이렇게 사람 모으기 쉽지 않아요.” 이 앨범 녹음 뒤 이병우와 조동익은 한국 대중음악을 한 단계 도약시킨 전설의 듀오 ‘어떤날’을 탄생시켰다.
당시 초등학생들도 따라 불렀을 정도로 대히트곡이었던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담긴 앨범이었지만, 발매 뒤 6개월 동안 음반이 팔리지 않아 마음고생이 컸다고 했다. “음악을 관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 미국에서 만난 한 분이 카세트테이프에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과 ‘사랑의 밀어를 따라’ 두 곡을 녹음해서 하루 종일 듣는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인기를 실감했죠.”
뒤늦게 폭발적 반응이 나왔다. “카페에서 이 앨범이 없으면 장사가 안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나이트클럽의 블루스 타임에도 제 노래가 나왔죠.”
이광조는 트로트와 포크로 양분된 당시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어덜트 컨템퍼러리라고 불리는 성인가요의 문을 연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저는 꾸준히 성인가요를 추구해 왔다. 사람들이 이제서야 조금씩 인정해주는 거 같지만, 아직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는 그는 “요즘 아이돌과 트로트로 양극화된 가요계를 보면 조금 걱정이 된다”고 했다. 특히 음반 녹음 때 목소리를 보정하는 행태를 꼬집었다. “일부 그럴 수는 있어요. 음반 전체를 다 보정한 목소리로 녹음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저희 때는 그런 보정 자체가 없었습니다.”
이번 콘서트 제목이 ‘더 보컬리스트’로 정해진 것에는 오히려 민망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너무 큰 타이틀을 줘서 영광이죠. 거기에 걸맞게 좋은 공연 보여드릴 것”이라며 “22곡을 부를 예정”이라고 했다. 일반적인 콘서트와 비교해 많은 선곡이다. 과거 히트곡부터 요즘 발표한 곡까지 모두 세트리스트에 넣었다. “콘서트 할 때 멘트도 많이 안 한다. 노래를 들으러 오시는 분들에게 최대한 많은 곡을 들려드리기 위해서”라고 한 그는 “콘서트 당일엔 목이 좀 아플 거 같다”며 웃었다.
어떻게 목과 건강을 관리하는 걸까. 비결은 없다고 했다. “아무것도 안 해요. 담배를 끊긴 했는데 특별하게 관리를 위해 하는 건 없어요. 하고 싶은 노래 하고, 자연스럽게 사는 게 좋아요.”
가수가 된 과정도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웠다. 그가 다니던 홍익대 미대는 서울대 미대와 1년에 한번 만나 체육대회를 열었다. 그때 서울대 미대에 다니던 이정선과 연이 닿았다. “내 노래에 코러스 한번 해봐라”라는 이정선의 제안이 지금의 이광조를 만드는 시발점이 됐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가수가 된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동안 24개의 정규 앨범을 내며 발라드, 재즈 등 여러 장르를 섭렵해왔지만, 특별하게 추구하는 장르는 없다. 그때그때 꽂히는 음악을 할 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빅밴드 재즈 보컬을 해보고 싶다”며 “그냥 노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공연장을 찾는 팬에 대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조금씩 세월이 가다 보면, 살아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절실해져요. 살아 있을 때 추억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때 갈걸, 후회하지 마시고, 생각나실 때 보러 오세요. 이광조는 가까이 있는 당신입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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