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돈 줬더니" 효과없는 이 건기식…알고 보니 표방식품?
"생체시계를 조절할 수 있는 멜라토닌 호르몬 함유" "국제학계가 주목하는 NAD+의 전구체" "특허받은 배합이 증명하는 멜라닌 생성 억제 효과"
각각 숙면을 부른다는 멜라토닌, 노화를 막아준다는 NMN(NAD+의 전구체), 피부 미백을 돕는다는 '글루타치온'을 주요 원료로 넣었다는 제품의 실제 광고 문구다. 마치 건강기능식품을 알리는 것 같지만 놀랍게도 건강기능식품을 표방한 일반식품, 일명 '건기식 표방 식품'의 광고에 삽입됐다. 과연 이런 건기식 표방 식품은 광고만큼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은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법적 정의에 녹아있다.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은 인체에 유용한 '기능성'을 가진 원료·성분을 사용해 제조·가공한 식품이다. 여기서 '기능성'이란 인체의 구조·기능에 대해 영양소를 조절하거나 생리학적 작용 같은 보건 용도에 유용한 효과를 얻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건강기능식품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식품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동물시험, 인체적용시험 등 과학적 근거를 평가해 기능성 원료를 인정하며, 건강기능식품은 이런 기능성 원료를 넣어 만든다. 모든 건강기능식품엔 식약처가 인증한 마크가 제품 겉면과 포장 상자에 새겨있다.
반면 건기식 표방 식품은 해당 마크만 없을 뿐, 제품 디자인과 포장 상태, 함유했다는 원료를 홍보하는 내용이 마치 건강기능식품인 것처럼 많은 소비자를 헷갈리게 한다.
최근 인기를 끄는 프락토올리고당(유산균의 먹이)을 담은 건기식과 건기식 표방 식품을 임의로 확인해보니 건강기능식품은 15g당 12g을 함유했지만, 건기식 표방 식품은 15g당 1g 남짓에 불과했다. 건기식 표방 식품의 프락토올리고당 함량이 건강기능식품의 15분의 1로 극미량에 불과했는데도, 가격은 15분의 1이 아닌, '반값'이었다. 함량 대비 비싸게 책정된 셈이다.
4조1695억원대 규모(2022년 생산실적 기준)의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능성 원료인 홍삼(9848억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홍삼은 유효성분인 진세노사이드(Rg1·Rb1·Rg3)를 얼마나 많이 먹느냐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건강 효과가 다르다. 식약처는 진세노사이드의 일일섭취량이 3∼80㎎이면 '면역력 증진·피로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2.4∼80㎎이면 '혈액흐름· 기억력 개선·항산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의 기능성 문구를 제품에 사용할 수 있게 허용했다. 홍삼 건강기능식품 중에서도 함량에 따라 쓸 수 있는 기능성 문구가 다른 것이다.
하지만 건기식 표방 식품 대다수는 이런 함량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소비자원이 시판되는 홍삼음료를 조사한 결과, 1회 분량당 진세노사이드 함량은 0.03㎎, 0.04㎎, 0.25㎎ 등에 불과했는데, 이는 건강기능식품 홍삼 제품의 기능성 관련 일일 섭취 최소량(2.4㎎)의 1~10% 수준이다. 건강기능식품 업계 관계자 A씨는 "이들 제품 상당수는 마치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할 수 있는 문구·제형을 사용해 소비자를 현혹하고, 규제의 사각지대를 악용하고 있다"며 "그 피해를 소비자가 고스란히 떠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건강기능식품 업계에 따르면 건강기능식품을 연구·개발하는 데 못해도 5~10년, 7억~15억원이라는 시간·돈을 투입해야 한다. 제품을 어렵게 출시해도 까다로운 광고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세부적인 기능성, 부원료를 제품에 표시하는 데에도 제약이 만만찮다는 것. 하지만 건기식 표방 식품은 이런 고민에서 자유롭다. 심지어 기능성 원료로 허가되지 않은 원료에 대해서도 기능성이 입증된 것처럼 호도하는 문구까지 넣은 광고도 쏟아진다.
게다가 건기식 표방 식품은 제형에 대한 규제도 없다. 마치 건기식·일반의약품으로 오인할 수 있게 하는 정제·캡슐·젤리·필름·분말·환·과립·액상 등 다양한 제형의 건기식 표방 식품이 속속 출시되는 이유다. 캔디류나 과·채 가공품인데 정제(알약 형태) 모양으로, 식용유지류는 캡슐 형태로 만드는 사례도 적잖다.
이런 이유로 건기식 업계에선 '이럴 바에야 건기식이 아닌, 건기식 표방 식품을 만들어 파는 게 더 낫다'는 토로가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B씨는 "건기식은 연구개발에만 막대한 시간·돈을 투자해야 하는 데다 우리나라는 건기식에 대한 제품 규격뿐 아니라 광고 문구도 세계적으로 깐깐하다"며 "반면 건기식을 표방하는 일반식품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해 많은 기업이 건기식을 개발하려 하기보다 일반식품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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