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 명분론에 빠진 정부, 대규모 세수 결손에도 추경 외면
30조원 가량의 대규모 세수결손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구체적인 재원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국가재정법상 요건에 부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반대한다는 입장만 내놓은 상태다. 2005년 이후, 세수결손으로 총 4차례의 세입 경정 추경이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면서 경기 대응에는 소극적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재정법 등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기금 여유재원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로서는 외국환평형기금 활용 가능성에만 선을 그은 상태다. 지난해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19조9000억원을 사용한데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등에 따른 환율 하락 시 대응을 위한 원화 재원 확보 필요성 역시 커지면서 꺼내기 어려운 카드가 됐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국민 부담을 이유로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을 줄이는 등 지난해보다 여유가 있는 기금을 찾기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결국, 올해에도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을 줄여야 하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올해 예정된 일부 사업 예산을 줄여야 한다. 이 경우, 지방재정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미 지난해 56조4000억원의 세수 결손으로 지방교부금을 18조6000억원 삭감하면서 지자체는 관급공사를 중단하고 물품 구매를 축소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약 30조원의 세수 결손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약 5조3000억원, 지방교부세는 4조2000억 가량 각각 줄어들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년 연속 지방이전재원 감액교부 시 지방재정에 미칠 영향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내수 대응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반년 넘게 계속된 수출 호조세에도 소매판매액지수는 2022년 2분기 이후 9개 분기 연속 감소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1년 전보다 2.1% 줄어드는 등 내수 부진은 장기화하고 있다.
세수결손이 발생했을 때 정부는 모자란 돈만큼 지출을 줄이면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오히려 저성장 흐름을 고착화할 수 있다. 앞서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 ‘상저하고’ 경기를 가정하고 재정의 60% 가량을 조기 집행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 재정 상황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내수와 직결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집행률이 이미 상반기에 71.4%에 달하는 상황에서 세수 부족으로 일부 사업이 축소될 경우 경기는 더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지난해 세수 여건 악화로 재정집행률이 떨어지면서 지난해 경제성장률(1.4%)에서 정부부문 성장 기여도는 0.3%포인트에 그쳤다. 이는 2011년(0.1%포인트)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 추경을 해서 세입·세출을 조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실제 2005년 이후, 정부는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총 4차례의 추경 편성을 했다. 2009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와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세수가 부족해지자 정부는 28조4000억원의 추경을 단행했다. 2013년에도 경제여건이 악화함에 따라 세수결손이 발생하면서 17조4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2015년과 2020년에도 정부는 세수 부족으로 각각 추경을 편성했다. 4차례의 추경 모두,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목적뿐 아니라 내수 부진 등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세출 예산 사업도 포함됐다.
그러나 기재부는 “국가재정법상 추경 사유는 경기 침체, 대량실업 등으로 규정돼 세수 부족 우려만으로는 요건에 부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추경 편성에 반대하고 있다. 세수결손으로 추경을 편성했던 과거 사례를 보면 적자 국채를 발행해 나랏빚을 늘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근 세수 오차가 빈번한 만큼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권성준 조세재정연구원 세수추계팀장은 지난 11일 열린 예정처 주재로 열린 토론회에서 “초과 세수 발생 시 결손에 대비해 기금 등으로 적립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초과 세수 시, 채무를 상환하고 세수결손 시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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