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 입장차·의협 ‘리더십 위기’… 협의체 구성, 한 달째 ‘공전’
29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6일 2026년도 의대 증원을 유예하자며 의료계에 대화를 촉구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의료계는 ‘2025년도 증원 백지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 대표가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에 대해 의료계는 “정부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참여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정부 입장 변화가 있어야 참여할 것”이라고 했고, 전국의대교수협의회 측은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해도 할 이야기가 없다”는 입장이다.
의정갈등의 핵심 당사자인 전공의들도 현 상태에서의 협의체 구성에 부정적이다.
정부는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과 무관하게 의료개혁을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추석 연휴기간에 응급실 위기감이 확산한 것도,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경증환자들이 지방에서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것도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등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료개혁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중증환자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려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 전환 지원사업에 연간 3조3000억원, 3년간 10조원의 건강보험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일반병상은 최대 15% 줄여 중증 수술이나 중환자실과 2∼4인실 입원료 수가 등은 50% 높이고, 910개 중증 수술 수가와 마취료를 50% 인상하는 등 중증환자 치료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의료계 대표단체인 의협은 상종병원 구조전환 개혁안에 대해 중환자 개념도 모호하다고 지적하고 “정부가 촉발한 의료대란 사태로 의료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내년 전문의 배출에 대한 해결책도 없이 상급종합병원을 전문의와 진료지원(PA) 간호사 중심의 병원을 만든다는 것은 근본적인 기능을 망각한 채 만들어낸 졸속 시범사업임을 정부 스스로가 방증하는 꼴”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모든 정책을 철회한 후에 의료계와 대화를 통해 환자들이 진정 믿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마련해 나가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의료개혁 움직임에 부정적인 의협은 최근 리더십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27일까지 일부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임현택 의협 회장에 대한 불신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상당수가 불신임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중간집계에서 투표자 77%가량이 불신임에 찬성했는데, 다음주에 발표될 최종결과에선 불신임 비율이 더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계에선 임 회장이 최근 여야 당대표를 만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해 상반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의협 내부에선 ‘의정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에 탄핵 주장도 사그러들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전공의 대표인 박단 비대위원장은 수차례 임 회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왔다.
박 위원장은 최근까지 SNS에 “임 회장은 사직한 전공의와 휴학한 의대생을 대표하지 않는다. 임 회장과 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고 했고, 지난달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서는 “그만두지 않으면 끌어내려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기도의사회도 ‘의협 집행부가 의정 갈등 상황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며 임 회장에 대한 불신임을 주장해왔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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