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안 싸움으로 돈 벌것 같지?”…진짜 선수들도 어렵다는 경영권분쟁 종목 [방영덕의 디테일]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byd@mk.co.kr) 2024. 9. 2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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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지금이라도 살까요?”

며칠 전, 재테크에 관심이 높은 A씨가 물어봅니다. 최근 국장(국내 증시)보단 미장(미국 증시)에 더 마음이 가 있던 A씨에게도 불과 일주일 새 주가가 30% 가량이 뛴 이 종목이 눈에 들어온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집안 싸움’에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바로 주식시장일 것 같아섭니다. 기업을 둘러싼 내부 경영권 분쟁은 개미 투자자들에겐 일종의 호재입니다. 통상 우호지분 확보를 위한 기업 간 경쟁이 일어나면서 주주친화정책이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장에서 생존을 목표로 치열한 지분 경쟁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5조원대 머니 게임으로 확전 조짐마저 보이니 빚을 내서라도 사고 싶은 마음,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기성 거래 양상이 보인다며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무려 75년간의 동업 관계를 끊고,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과 영풍의 얘깁니다.

“75년 동업관계가 무색”...공개 저격에 날 선 여론전
고려아연이 24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에서 MBK·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된 공개매수에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지난 일주일 새 고려아연과 영풍 및 MBK파트너스(이하 MBK) 측은 하루에도 몇 개의 입장문을 내놓고 있습니다. “근거없는 억측이다” “여론을 호도한다” “현실성 없는 주장이다”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 등등 경영권 분쟁으로 바짝 날이 서 있는 양측의 신경전이 점입가경입니다.

특히 고려아연은 경영의 주도권이 MBK로 넘어가게 되면 중국 등으로 핵심 기술 유출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고려아연은 정부에 자사의 이차전지 양극재 핵심 원료인 전구체 제조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달라고 전격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국가 예산이 들어간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은 경제안보상 이유로 정부 승인이 있어야 외국 기업에 인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날, 기자회견을 가진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영풍과 MBK의 적대적 M&A 시도는 단순한 기업 간 경영권 다툼이 아니라 대한민국 기간산업의 핵심기술과 미래 기술 안보에 관한 문제란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부회장은 “중국 자본을 등에 업은 MBK는 우리의 기술, 우리의 미래, 우리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돈, 돈, 돈, 돈뿐”이라며 ”투기세력 관점에서 보면 고려아연에게는 (중국과 같은 다른 나라에) 팔아먹을 몇 천억짜리 기술이 있고, 그것만 보일 것”이라고 일갈했습니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왼쪽)과 강성두 영풍 사장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 나란히 앉아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MBK와 영풍은 이같은 주장에 “근거없는 억측일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김광일 MBK 부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가기간산업인 고려아연을 중국에 팔수도 없고, 팔지도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최 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을 맡은 이후 원아시아파트너스나 이그니오홀딩스 등에 무분별하게 투자했고, 이에 따른 손실로 고려아연 재무건전성이 나빠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날로 과열되는 양측의 여론전은 상대 흠집 내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종합상사 스미토모 등 일본 기업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 관련 ‘옛 전범 기업에 도움을 구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은 토종 사모펀드인 MBK를 ‘중국계 자본’이라는 거짓 프레임을 씌워놓고 본인들은 일본의 대표적 전범 기업과 ‘라인야후 경영권 강탈’ 논란을 일으킨 일본 기업과 손잡으려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고려아연은 영풍 측 비난에 대해 명예훼손 등 법적 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즉각 맞불을 놓은 상태입니다.

공개매수가 또 올릴까? 대항 공개매수는?...치열한 수싸움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이 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공개매수에 나서게 된 배경 등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고려아연은 단기간 조 단위 자금력을 앞세운 MBK로부터 경영권을 지키려면 우군확보가 급선무입니다.

이에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은 지난 추석 연휴 때부터 하루도 쉬지않고 재계 인맥을 총동원, 국내외 다양한 기업 등에 우군이 되어줄 것을 설득하고 요청하고 다닌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공개한 우군 기업은 아직 없습니다.

현재 고려아연 지분 중 한화(7.75%)·현대차그룹(5.05%)·LG화학(1.89%)·한국투자증권(0.77%) 한국타이어(0.75%), 모건스탠리(0.48%) 등이 최 회장의 우호지분으로 분류될 뿐 입니다.

최 회장은 며칠 전 임직원에 보낸 서한에서 “지난 며칠 간 밤낮으로 많은 고마운 분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아 계획을 짜냈다”며 저는 이 싸움에서 우리가 이길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습니다.

고려아연 내부적으로는 “우리도 다 계획이 있다” “깜짝 놀랄만한 우호세력의 지원을 받게 됐다” 등의 얘기도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섣불리 패를 까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지요.

영풍과 MBK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50만원대를 유지하던 고려아연 주가는 MBK가 주당 66만원에 공개매수 계획을 밝힌 이후 단숨에 70만원대까지 폭등했습니다.

공개매수가를 웃도는 주가로 인해 시장에서는 MBK가 공개매수 가격 상향을 결정하는 일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아니나다를까 MBK측은 지난 26일 고려아연 지분 공개 매수 가격을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전격 올렸습니다.

MBK는 “인상된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 75만원은 상장 이래 역대 최고가 67만2000원보다도 11.6%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하며 지분 확보 공세 의지를 다졌는데요.

MBK의 공개매수 기간은 10월 4일까지 입니다. 이미 시간과 자본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고려아연을 기습공격한 영풍과 MBK파트너스로서는 급할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누가 주도권 잡아도 우려되는 ‘승자의 저주’
강성두 영풍 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개인, 외국인, 기관 등은 주가보다 매입가가 높아야 공개매수에 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만 공개매수가를 높여 지분 경쟁이 과열되는 것은 양측 모두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쟁 끝에 누가 주도권을 잡더라도 자칫 잘못하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양측이 높은 금리와 수익률을 약속하며 자금을 유치했을 가능성이 큰 만큼, 앞으로 누가 경영권을 쥐든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현재 지분 경쟁의 후폭풍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그 동안 경영권 분쟁을 겪은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결과적으로 기업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례가 많았습니다.

일례로 지난해 말 MBK파트너스 개입으로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겪은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역시 대외적으로 경영진의 지배력이 약하다는 인식이 생겨났고요.

SM엔터테인먼트 인수를 두고 하이브와 경쟁을 벌였던 카카오의 경우 그 경쟁에선 비록 이겼지만 당시 공개매수 과정에서 사모펀드 등과 공모해 시세조종을 한 혐의가 포착돼 김범수 창업자가 구속기소됐습니다.

금융당국은 지난 23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과 함께 공개매수에 나선 영풍정밀을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했습니다. 영풍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려아연은 거래소로부터 단기과열종목으로 지정예고됐습니다.

투자경고 종목을 매수할 경우 위탁증거금을 100% 납부해야 하고 신용대출이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투자 리스크가 큼을 알 수 있습니다.

전쟁 통 속에서도 함께 회사를 차릴 만큼 각별한 사이였던 고려아연과 영풍. 무려 75년 동안 동업을 해왔습니다. 우리 재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그래서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재계 큰 어르신들의 중재를 받아 화해를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조언에 귀를 기울이던 두 회사였습니다만, 기어코 ‘쩐의 전쟁’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30~40여년 이상 두 기업에 열정을 바쳐온 이들의 운명이, 수백 수천명의 임직원들의 운명이 (그리고 불나방처럼 달려든 개미투자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이 ‘쩐의 전쟁’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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