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식 확인 10분→몇 초 기술 상품화” AI로 돈 벌자는 최태원의 구상 이미 현장에 [비즈360]
울산 지역 AI 기업 ‘딥아이’와 협업해
‘AI IRIS 자동 평가 솔루션’ 최초 개발
정유·석화 외 다양한 분야 적용 가능
설비자산 관리 솔루션은 사업화 성공
제조가 AI 팔자는 최태원 역발상 구현
[헤럴드경제(울산)=김은희 기자] “사람이 내시경을 하듯 수십에서 수백, 많게는 수천 개의 튜브관이 있는 열교환기는 초음파 검사를 합니다. 얇은 관 하나하나에서 수집된 초음파 신호는 1㎜ 픽셀 단위로 확인해요. 1000개의 구멍이 있는 10m 길이의 열교환기라면 10㎞ 도로를 걸어가며 떨어진 바늘을 줍는 임무인 거죠. 그걸 AI(인공지능)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수 있습니다.”
지난 24일 찾은 울산 남구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울산CLX).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의 열교환기 앞에 선 김기수 딥아이(Deep AI) 대표가 ‘AI 비파괴검사(IRIS) 자동 평가 솔루션’을 실행하자 화면에는 튜브관 내부 신호가 나타났다. 몇 초쯤 자동분석을 하더니 관 어디쯤 부식이나 균열, 마모가 얼마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그려 보여줬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맨눈으로는 6~10분쯤 걸렸을 작업이다. 열교환기 전체를 살피면 하루 이상은 꼬박 걸린다.
김기수 대표는 “수많은 튜브에서 한두 개의 결함을 찾는 작업인 만큼 당연히 인적 오류가 발생하기 쉽고 굉장히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며 “AI 솔루션으로는 빠르게 평가 판독이 가능한 것은 물론 결함만 찾는 게 아니라 관의 균열이나 부식 상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에 대한 분석이나 예측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울산 지역 AI 기업인 딥아이와 협력해 세계 최초로 AI IRIS 자동 평가 솔루션을 개발했다.
1년 365일 가동되는 정유·석유화학 공정은 안전 운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검사를 진행하고 정비 여부를 판단한다. 대표적인 게 초음파를 이용해 결함을 찾는 비파괴 검사로 주로 열교환기 결함 검사에 사용된다.
열교환기는 온도가 높은 물체에서 낮은 물체로 열을 이동시키는 장치로 주로 열을 활용하는 정유·석유화학 공정에서는 제품 생산 시 온도 조절에 필수적인 핵심 부품이다. 원유를 끓여 정제하고 다시 식혀 제품화하는 과정에서 뜨거운 유체와 차가운 유체가 혼합 없이 서로 열에너지를 교환해 공정 효율을 높여주는 식이다. 울산CLX에만 약 7000기가 있고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 내에는 약 3만기가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열교환기 고장 원인의 약 80% 이상은 튜브 손상이다. 열교환기가 손상되면 서로 다른 유체가 섞이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주기적으로 튜브의 균열과 부식, 마모를 검사하고 있다.
기존에는 초음파를 이용해 튜브 내부를 촬영한 뒤 전문가가 결함을 확인해 왔다. 사람의 경험과 역량에 의존하기에 정확도나 소요 시간 등에서 한계가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선 관련 분야 전문가가 줄어 인력 확보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SK이노베이션과 딥아이가 개발한 AI IRIS기술은 초음파 촬영 후 AI가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결함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정확도가 95% 이상이고 검사 시간도 90% 이상 단축된다.
SK이노베이션은 울산CLX에서 현장 실증을 거쳐 전면 적용하고 울산 정유·석유화학 단지로 확대하는 사업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정유·석유화학 플랜트 외에도 열교환기가 쓰이는 제철, 배터리 등 다른 공장이나 배관, 보일러, 탱크, 자동차, 항고기 부품 분야까지 시장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는 AI를 통한 제조 혁신에 그치지 말고 개발한 AI를 상품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구상과도 맞닿아 있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5일 열린 울산포럼에서 “울산의 제조업이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한쪽 방향에서만 생각해서는 차별적인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며 “역으로 제조업을 기반으로 AI를 훈련시키고 이를 통해 더 똑똑해진 AI를 상품화하는 등 양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AI IRIS기술은 대기업이 축적한 노하우와 데이터, 중소기업의 AI 기술이 융합된 사례이기도 하다. 지역 AI 기업과 협력해 울산의 특성을 살린 ‘산업AI’를 키운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은 “AI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제가 잘 돼 있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로 AI를 훈련시켜야 하지만 대기업도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서 울산시 차원에서 전체 기업이 함께 AI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울산CLX는 AI와 디지털 전환(DX)을 접목한 ‘스마트 플랜트’로 진화하고 있다. 설비자산 관리 솔루션인 오션허브(OCEAN-H)와 모바일 기반의 작업 허가 시스템인 스마트 워크 퍼밋(Smart Work Permit), 증강현실(AR) 정비작업 시뮬레이터 등이 이미 성공적으로 구축돼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자체 개발한 오션허브는 사업화에도 성공했다. 오션허브는 안정적인 설비의 운영·유지·보수를 위해 지난 60여년간 축적된 데이터를 다각도로 활용하도록 구현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초부터 울산 지역 정유·화학업체 5개사를 고객으로 확보해 약 3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으로는 6억원 수준으로 크지 않지만 직접 개발한 AI 솔루션을 팔아 돈을 벌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SK이노베이션은 보고 있다. 국내 환경에 맞게 구현된 시스템에 정유·석유화학 업체는 물론 발전, 철강, 배터리 등 분야에서도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인도 타타그룹의 TCS와 업무 협약을 체결했으며 향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인도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정창훈 SK에너지 스마트플랜트추진팀장은 “기업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솔루션을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일하는 방식의 차이로 편의성, 활용성, 확장성 측면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60여년의 설비 가동 경험과 노하우, 기술을 바탕으로 IT를 융합해 우리 입맛에 맞는 고도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오션허브를 사용 중인 이수스페셜티케미칼의 이철영 검사팀장은 “IBM 등 해외 소프트웨어도 있었지만 SK의 오션허브가 석유화학에 특화돼 있어 다양한 관련 데이터를 연계할 수 있고 오픈소스로 돼 있어 우리만의 특성에 맞게 변환해 사용할 수 있어 강점이 컸다”고 도입 배경을 전했다.
SK이노베이션은 앞으로도 AI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설비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AI·DX 솔루션을 새로운 먹거리로 삼아 해외 진출을 도모하며 울산을 AI 중심의 산업도시로 도약할 기반을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정창훈 팀장은 “제조산업의 지식과 데이터가 집약된 울산에서 AI·DX 개발 활동을 이어 나가면 AI 시대 전통산업이 고도화될 수 있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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