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만들다가 회사 망할 판"...디지털교과서 우려가 현실로

정인지 기자 2024. 9. 2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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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심사에서 무더기 탈락..."심사본 안 열려"vs"개발시간 촉박"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에서 참가자들이 AI 디지털교과서 프로토타입을 체험하고 있다. 2024.09.23. /사진=전신
내년부터 도입될 AI(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많은 교과서 업체들이 뛰어들었지만 수학과 정보 과목에서 탈락한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개발비와 인건비로 과목당 수십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교과서에 최종 탈락하면 비용도 날라가는 셈이다. 특히 초등학교 수학과 중학교 정보는 단 두곳의 출판사만 합격한 것으로 알려져 디지털교과서 시장 독식이 우려된다.
초등 수학, 중·고등 정보 합격 업체 단 2곳씩...시장 독식 우려
29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 24일 각 기업들에게 디지털교과서 1차 합격 여부를 통보했다. 초등 수학 3~4의 경우 11개사가 참여했지만 C사(2종)와 Y사 두곳만 합격했다. 초등교과서의 강자 I사, 교과서 발행부수 1위 기업인 M사, B사도 탈락해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외에도 디지털교과서로 교과서시장에 문을 두드렸던 W사 등도 고배를 맛봤다. 초등, 중등, 고등을 모두 합한 수학 과목 합격률은 36.4%다.

정보는 합격률이 17.4%로 더욱 낮다. 정보는 중학교에 13개사, 고등학교에 10개사가 출원했으나 중·고등 각각 2개사만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영어의 경우 초등 3~4학년 1개사를 뺀 모든 업체가 합격했다.

과목별로 합격률이 크게 갈리면서 교과서업체들은 평가 기준에 대한 불만을 표하고 있다. 수학과 정보의 경우 한국과학창의재단(이하 창의재단)이, 영어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심사 주체다. 심사기관들은 내용심사와 기술심사를 각각 5개 영역, 4개 영역으로 나눠 심사했는데, 한 영역이라도 60% 미만이거나 총점이 80점을 넘지 못하면 탈락시켰다.

심사 기관 측은 지난 24일 설명회를 열고 "정보 과목 합격률이 수학에 비해 낮은 이유는 오류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심사본이 안 열린 경우에도 점수를 낮게 줬다"고 밝혔다. 초등 수학과 관련해서도 "초등, 중학은 개념 접근 방식 및 수준이 고등과 다른데 이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초·중등에 고등학교 내용을 담아 선행금지에 위반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두 기관은 다음달 23일까지 이의신청을 접수하고, 같은달 29일 이의신청 심사 결과를 발표한다. 이후 다음달 28일까지 수정본을 접수해 11월 29일에 최종 합격을 발표한다.

1차 심사에서 탈락한 기업들은 "개발 기간이 너무 촉박했다"며 불만을 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디지털교과서 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기술 개발 가이드라인 등은 8월말에야 공개했다. 교과서 업체들은 꾸준히 시간이 부족하다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2025년 도입을 강행했다.
"서책·디지털교과서·문제집 시장 한꺼번에 뺏길 판"
교과서 업체들은 그러나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디지털교과서 개발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디지털교과서는 서책과 별개로 학교 현장에서 선택하지만, 대부분 서책과 디지털교과서의 출판사를 동일하게 선택할 것으로 예상해서다. 한 교과서 업체 관계자는 "디지털교과서에 탈락하면 개발비 수십억원을 날리는 동시에 서책 교과서, 문제집 시장 점유율까지 뺏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과서 업체들은 이의신청에도 고심하고 있다. 이의신청을 하더라도 수정본 접수까지 한달 밖에 남지 않아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 지 장담하기 어렵다. 탈락한 업체들은 내년 상반기에 1회에 한해 재검정을 신청할 수 있지만 추가 개발비와 함께 심사료도 재차 부담해야 한다. 디지털교과서는 수학·정보 기준 책별 검정수수료만 2800만~4800만원이 드는데, 이는 서책 수수료 대비 2배 이상 비싸다.

여기에 교육부가 학교 현장에 교과서 선택 시 "가격을 고려하라"고 새로운 지침을 내려, 수익을 얼마나 보전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지난달 말 '2025학년도 검정·인정 도서 선정 매뉴얼'을 교육청 등에 배포하면서 "(교과용도서 선택시)예산 상황 등을 고려해 내용뿐 아니라 가격적인 부분도 함께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서책 뿐 아니라 디지털교과서에도 적용된다. (관련기사 [단독]디지털교과서 도입 앞둔 교육부, 교과서 가격 인상 사실상 제동)

또 다른 교과서 업체 관계자는 "내년에는 2026학년도에 도입되는 국어, 사회, 과학 디지털교과서도 동시에 개발해야 해 비용이 폭증할 것"이라며 "교육부는 '교실혁명'을 위한 비용을 기업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인지 기자 inj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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