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이기 vs 투명성 강화…'노조 회계공시' 위헌?[세상을 바꿀 법정]
"위임입법 한계 일탈한 위법" "법 집행 위한 명령"
[편집자주] 판결은 시대정신인 동시에 나침반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제시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법정에서 나침반의 방향을 돌려놓을 사건들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세상을 바꾼 법정' 시리즈를 통해 과거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대체됐는지를 살펴본 데 이어 '세상을 바꿀 법정' 시리즈를 통해 나침반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짚어봤다.
(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노골적인 노조 길들이기" "노조 회계 성역 아냐"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노동 개혁의 하나로 노조의 회계 공시를 강화하면서 불거진 갈등이다. 회계 공시를 하지 않을 경우 조합비 세액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하자 노동계는 회계 공시를 사실상 의무화했다며 반발했다.
시행 직후 노동단체는 따르지 않을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을 우려해 일단 수용했다. 하지만 헌법소원을 정식으로 제기, 헌법재판소가 이를 심리하고 있다.
헌재 심리 결과에 따라 의정 갈등에 이어 노정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액공제와 결부해 사실상 '의무화' 논란
문제가 된 건 노조의 회계 공시를 위해 개정한 노조법과 소득세법의 시행령이다. 노조가 정기적으로 회계감사나 결산 결과 등을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지만 회계감사원의 자격이나 결산 결과 공표의 시기·방법 등을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었다. 관련 규정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다.
정부는 노조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재무·회계 관련 업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거나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회계감사원을 한정했다. 또 노조가 회계연도 종료 후 2개월 이내에 게시판 공고 등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공표하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정부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노조가 결산 결과를 공시하는 경우에만 조합비의 15%를 세액공제 혜택을 받도록 했다. 노조가 다른 공익 단체의 기부금과 달리 아무런 조건 없이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의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조 "위임입법 한계 일탈한 위법…기본권도 침해"
이에 대해 노동계는 시행령 개정이 위임입법의 한계를 일탈한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한국노총은 "시행령의 상위법인 노조법과 소득세법에서 위임한 바 없는 사항을 시행령으로 (정부가) 규정했다"며 "위임입법 한계를 일탈한 위헌적 행정입법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시행령 개정은 헌법이 보장한 노조의 단결권, 재산권, 평등권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입장이다. 노조의 재정은 노조 활동의 근간으로 노조의 자주성이 요구되는데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결산 공표 시기·방법 등을 제한한 정부 시행령은 노조의 자주적인 단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조합원 1000명 이상 노조와 그 상급단체가 노조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그 조합원이 조합비 세액공제에서 배제하도록 해 재산권을 침해하는 '연좌제'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상급단체에 가입한 노조와 가입하지 않은 노조 간에도 차별이 발생해 평등권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봤다.
"시행령 무조건 위법 아냐…법 집행 위한 명령" 반론도
반면 정부의 시행령 개정이 무조건 위법은 아니라며 모법(母法)과 노조 회계 운용 관련한 현실적인 상황 등 여러 가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반박도 존재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행정 입법 중에는 모법에서 범위를 정해 위임받아서 하는 위임 명령과 위임과 상관없이 법률의 시행을 위해 하는 집행 명령이 있다"며 "(시행령이 위법이라는 주장은) 행정 입법을 위임 명령만 있다고 생각한 것일 수 있다. 위임 입법의 범위가 아니라 법률의 집행을 위해 필요한 부분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법에 회계 공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더라도 노조 회계의 투명성에 대한 원칙이 있고, 그 투명성을 확인하기 위해선 당연히 이 같은 공시가 필요해 법률 시행을 위한 집행 명령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현행 노조법에 노조의 운영 상황이라든가 재정, 결산 내용을 행정관청이 요구하면 공개하게 돼 있다"며 "행정관청 입장에선 결산과 관련해 어떤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가 신뢰 측면에서 중요하므로 법률 위임이 없더라도 시행령을 통해 회계 감사원 자격에 대한 기준 정도는 제시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얼토당토않게 비용이 많이 든다거나 실무적으로 하기 어려운 요건을 부과하는 등 노조 운영을 방해할 정도로 지장을 줄 경우는 위헌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오히려 조합원들의 법익 보호라는 우선적 가치가 있다는 측면에선 합헌으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헌법소원 사건의 결론이 나기까지는 통상 1~2년가량이 소요된다. 이르면 올해 말부터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노정 갈등이 촉발될 수 있어 이목이 쏠린다.
buen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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