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격변] ③ 경북 사과 농민이 강원 양구까지 올라온 까닭은

양지웅 2024. 9.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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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 따라 주산지 점차 북상…날씨가 새로 쓴 '과일여지도'
온난화가 저온 피해 부추기는 역설…재해 강한 신품종 연구 박차

[※ 편집자 주 = 최근 폭염과 기후 온난화로 강원에서도 이상 기후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주민과 관광객 불편뿐만 아니라 농작물 수급 불안으로 물가 상승, 경기 침체 등 또 다른 재앙을 예고하는 상황입니다. 연합뉴스는 강원 도내 바다와 해안, 농어촌 최일선 기후변화 현장을 점검하고, 미래 대응을 위한 실마리를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격주로 송고합니다.]

양구 해안면 사과 농가 [촬영 양지웅]

(양구=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가 전국의 과수 재배 지형을 점점 북쪽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비교적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는 사과는 온난화에 따라 주산지가 강원도로 바뀔 형편이다.

요즘 주목받는 사과 생산지인 양구군 해안면을 찾아 농민들로부터 사과 재배의 현주소를 확인해본다.

사과 돌보는 심정석씨 [촬영 양지웅]

"서늘한 곳 찾아 청송에서 양구로 터전 옮겨…후회 없어요"

"같은 사과 품종이지만, 여기 양구에서 키운 것과 아래 경북에서 나온 게 경매가격이 2배가량 차이 납니다.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가 월등하니까요."

양구군 해안면에서 15만여㎡ 규모로 사과 농사를 짓는 심정석(70)씨는 9년 전 경북 청송을 떠나 이곳에 정착했다.

추석 사과 품종인 '홍로' 재배를 위해서다.

홍로는 기온에 따른 품질 영향을 많이 받기에 심씨는 해발 600여m에 과원을 조성했다. 이는 청송의 농장보다 2배 이상 높은 곳이다.

심씨의 설명에 따르면 사과의 품질은 기온이 좌우한다.

꽃이 수정해 열매를 맺으면서 속을 채울 때 기온이 25도가 넘어가면 양분이 과일로 가는 작용을 방해해 당도와 단단함이 떨어지는 까닭이다.

양구 사과 [양구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우리 농장은 올여름에도 열대야가 없었다"며 "일교차가 크니 나무가 낮 동안 만든 양분을 밤에 다 열매로 보내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어 "농사는 하늘과 동업하는 것"이라며 "내가 경매에 내놓은 사과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값을 받으니 경북지역 동료 농민들이 양구로 터를 옮기는 것을 문의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충남 예산부터 경북 봉화, 전북 무주, 남원까지 전국을 돌면서 평생 사과 농사를 짓던 농민 최원근(70)씨도 같은 이유로 10년 전 양구 해안면에 정착했다.

그는 "해안면이 해발이 높아 서늘하고 일교차가 크다 보니 사과가 단단하고 당도도 높다"며 "사과 재배 기술을 갖춘 전국 농민들이 양구로 찾아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구 해안면 펀치볼 마을 전경 [촬영 양지웅]

온난화가 냉해 부추기는 역설…30년 뒤에는 강원에서만 사과 재배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는 역설적으로 과수 저온 피해를 부추기고 있다.

3월의 더운 날씨에 일찍 꽃망울을 터뜨린 꽃들이 4월 초 꽃샘추위를 만나면 수정과 생육에 심각한 장애를 입기 때문이다.

개화기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꽃눈의 씨방이 갈색으로 변하기 쉽다.

이럴 경우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맺힌 열매가 빨리 떨어지는 등 피해가 발생한다.

작년 과수 이상저온 피해 면적은 전국에서 3만7천여㏊에 달했다.

강원 고랭지의 경우 남부지역보다 과수 꽃이 1주에서 열흘가량 늦게 펴 저온 피해를 종종 비켜 갔다.

과수 재배를 방해하는 기후는 꽃샘추위뿐 아니라 기습 우박, 폭염과 강한 햇볕, 기록적인 장마 등 다양하다.

최씨의 말처럼 농사의 동업자인 하늘이 풍년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셈이다.

온난화가 불러올 과수 재배 지형 변화는 폭우, 기습 추위, 우박 등 단순한 기후 현상을 뛰어넘는다.

이상 저온 농작물 피해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농촌진흥청이 작성한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를 보면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전국 곳곳이 사과를 기를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2030년대에는 사과 재배지가 강원과 충북으로 좁혀지고, 2050년대가 되면 강원 고랭지만 사과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곳으로 국한된다.

결국 2070년대가 찾아오면 대한민국은 사과를 거의 기를 수 없는 땅으로 변해버린다.

이 예측은 산업기술의 빠른 발전을 위해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고 도시 위주의 무분별한 개발이 확대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뤄졌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사과가 소멸할 것이라는 비극적인 시나리오인 셈이다.

기후 변화에 따른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 [농촌진흥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농정 당국은 우선 기후 환경과 농업 환경 변화에 따라 지역 맞춤형 품종 보급으로 사과 생산 기반을 안정화할 방침이다.

농촌진흥청은 홍천에는 고온에도 착색이 잘 되고 병해에 강한 동시에 당도와 산도가 뛰어난 사과 품종인 '컬러플'을 시범 재배하며, 군위에는 착색이 아예 필요 없는 '골든볼' 품종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29일 "사과는 우리나라 과일 재배 농가의 16.8%를 차지하고 재배 면적도 가장 넓은 작목이지만, 현재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의하면 미래에는 강원 일부에서만 재배될 것으로 예측돼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노지에서 장기간 재배하는 과수 작물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비켜 가기 힘들다"며 "전보다 촘촘한 보급 체계를 만들고 유통시장도 확보해 다양한 품종을 원하는 소비자 수요에 부응하도록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여름비 맞으며 자라는 양구 사과 [촬영 양지웅]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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