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CVC, 대기업·스타트업 손잡는 혁신 창업 생태계의 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타트업에 대규모 자본 유치는 물론 대기업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한 단계 성장할 기회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대기업도 투자한 스타트업과 협력하며 새로운 혁신에 나설 수 있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윈윈전략’인 셈이다.
더욱이 CVC 투자는 인수합병(M&A)과 연결돼 스타트업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역할을 하며, 스타트업 생태계 투자 선순환의 핵심 키로 부각되고 있다.
대기업 지주회사가 지분 100%로 설립할 수 있는 벤처캐피털(VC) 회사인 CVC의 국내 역사는 2022년 시작됐다. 2021년까지만 해도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규제 때문에 일반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금융회사인 CVC를 설립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21년 12월 일반 지주회사 체제 내 CVC 설립을 허용하는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되면서 2022년부터 지주회사의 국내 스타트업 투자가 가능해졌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대기업이라는 대규모 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지난해 GS벤처스, 포스코기술투자, 롯데벤처스 등 국내 CVC가 스타트업에 투자한 금액은 약 2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같은 해 전체 벤처투자액 10조9000억원의 19% 수준으로 CVC가 국내 스타트업 투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기존 VC가 재무적 수익을 목적으로 한다면, CVC는 기업의 기술 혁신과 새로운 시장 진출 등 전략적 목표를 우선으로 한다. 대기업 CVC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대기업의 인프라, 경영 시스템 등을 입혀 새로운 도약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CVC 투자는 스타트업 M&A 활성화와도 연결된다. M&A는 스타트업 생태계 선순환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M&A로 수익을 본 창업가들이 다시 창업에 나서거나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등 스타트업 생태계 핵심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스타트업 M&A 시장이 침체돼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스타트업 M&A는 695건이었지만, 한국은 86건에 불과했다.
이처럼 침체된 스타트업 M&A 시장을 CVC가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CVC가 스타트업에 투자함으로써 그 스타트업의 가치를 시장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앞서 언급한 CVC가 단순히 스타트업의 지분을 매매해 이익을 얻는 전통적인 투자 방식이 아닌, CVC의 모그룹과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함께 성장한다는 것도 스타트업 M&A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 7월 열린 ‘기업 혁신을 위한 스타트업 M&A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CVC 투자가 피인수기업에 대한 불확실성 완화 역할을 하고, 좋은 M&A 대상을 식별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마켓 센싱(market sensing) 역할을 한다”며 “CVC 투자와 M&A 간 연계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인지한 정부도 대기업 CVC의 역할을 강조하며, 스타트업 투자 후 M&A가 이뤄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지난달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삼성전자, 현대차, HD현대중공업 등 대기업 8곳과 함께 대기업(CVC)과 스타트업의 협력을 강화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CVC 투자는 대기업에도 혁신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기존 성장의 틀에 갇힌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투자해 그들과 함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개방형 혁신, 즉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최근 만난 롯데벤처스의 전영민 대표는 “이제는 대기업 홀로 혁신하기 어려운 시대”라며 “스타트업과 협업해 혁신하는 기업은 지속성장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혁신사례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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