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지는 ‘전세사기 공포’에…학생들 “무서워서 월세 살래”
“이사갈 집은 처음부터 월세로만 알아보고 있어요. 전세는 도저히 안심이 안 돼서…” (대학원생 이모(26)씨)
2022년 첫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되어 가지만 여전히 사회초년생을 대상으로 한 전세 사기 범죄가 계속되면서 세입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일부는 전세로 살 때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아예 ‘전세 대신 월세’를 택하는 추세다.
서울 관악경찰서도 이달 13일 계약이 끝난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50대 임대사업자 연모씨를 사기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연씨는 서울대생 등이 다수 거주하는 관악구 봉천동 일대 빌라·다세대주택 4채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피해자 수는 20여명으로 총 미반환 보증금 규모는 3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월세로 갈래”…전세 기피 현상 뚜렷
대학가에서 전세사기 사건이 잇따르자 독립을 계획하는 20·30세대 세입자들이 전세를 기피하거나, 독립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회사원 이모(31)씨는 “슬슬 독립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전세사기 뉴스를 보고 부모님도 ‘그냥 남으라’고 했다”면서 “언제쯤 잠잠해지려나 했지만 올해도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서대문구 대학가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모(24)씨는 “곧 계약 만기일이라 이사를 갈 생각인데, 주변에서 ‘꼭 월세로 가라’고 신신당부했다”면서 “조금 더 돈을 내더라도 안전한 월세로 가려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세사기 피해자 상당수는 사회초년생인 만큼 이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022년 7월~올해 7월까지 벌인 전세사기 특별단속에서 2689건의 의심 사례가 발견돼 피의자 8323명을 검거, 610명을 구속했다. 피해자 총규모는 1만6314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30대가 37.7%, 20대 이하가 25.1%를 차지했다. 전체 피해자의 약 63%가 청년층인 셈이다.
아파트보다 연립·다세대·단독주택 등 비아파트 거래에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는 사실은 시민들의 ‘전세 기피’ 현상 아래 전세 사기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했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올해 상반기 전국 아파트 거래량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3.9%로 최근 5년 평균(38.3%) 대비 5.6%포인트 증가했는데, 비아파트는 52.8%에서 69.6%로 16.8%포인트나 급증했다.
◆“보증보험 꼭 가입…정보 열람도 쉬워져야”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 사기 피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이 유일하다. 수도권은 7억원, 그 외 지역은 5억원 이하까지 보증받을 수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기본적인 등기부 등본 확인과 보증보험 가입으로 1차 피해 예방은 가능하다”면서 “몇십만원 아끼려 하지 말고 꼭 보증보험에 가입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월세와 관련된 정보 열람을 더 쉽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달 1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대한법무사협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김천일 강남대 부동산건설학부 교수(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운영위원)는 “현행 공시제도는 정보가 분산돼 있어 외부 관계자의 열람이 어렵고 정확도도 떨어진다”며 “전세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세입자는 물론 대출 기관 등도 손쉽게 임차권 관련 정보를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법무사협회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를 지원해 온 정경국 법무사는 “전입·확정일자를 보는 방법이 번거롭고 부정확하다 보니 다른 선순위임차인을 확인하지 못한 채 후순위 우선변제권자로 전락하는 경우, 우선변제권자를 확인하지 못하고 돈을 빌려준 제삼자가 경매절차에서 배당을 받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면서 “주택임차권의 공시방법을 일원화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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